프란치스코 교황(왼쪽)이 지난 2015년 9월 20일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아바나/AP 연합뉴스
퇴임 뒤 서민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동네 할아버지 패션’으로 상징
서구 부르조아 문화를 상징하는 ‘정장’에 대한 문화적 거부감 작용
자신을 예방하는 외국 정상 위해 정장 차려입을 의무가 없다고 느껴
서구 부르조아 문화를 상징하는 ‘정장’에 대한 문화적 거부감 작용
자신을 예방하는 외국 정상 위해 정장 차려입을 의무가 없다고 느껴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왜 트레이닝 복만 입을까?
쿠바 혁명을 이끈 쿠바의 전 지도자 카스트로는 지난 19일 쿠바공산당 제7차 전당대회 연설에서 아디다스 트레이닝 복을 입고 나타났다. 사실상 그의 고별 연설인데도 그는 ‘동네 할아버지의 가장 누추한 패션’을 고집했다. 그는 앞서도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과 만날 때도 트레이닝 복 패션을 고수했다. 특히 교황과의 엄숙한 만남에서도 그는 트레이닝복 패션을 고집해, 교황의 엄숙하게 격식을 갖춘 하얀 성의와 극명한 대비를 보여줬다.
카스트로의 트레이닝 복 패션은 지난 2006년 수술을 받은 뒤 부터 출현했다. 수술 회복 과정에서 환자복 대신에 트레이닝 복을 입고 모습을 드러냈다. 환자복보다도 트레이닝 복이 더 편하고 활동적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또 트레이닝 복을 입으면 사진도 잘 받기 때문에 좋아한다고도 전해졌다.
처음에 그는 붉은색, 백색, 푸른색이 혼합된 아디다스 트레이닝 복을 입었다가, 나중에 휠라, 푸마, 나이키 트레이닝 복도 입었다. 나이키는 미국의 대쿠바 금수조처로 공식적으로는 쿠바에서 판매되지 않기 때문에 그의 트레이닝 복 패션에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그의 트레이닝 복 패션의 최후 승자는 아디다스가 됐다.
카스트로가 트레이닝 복 패션을 고집하는 이유는 명확치 않다. 다만 그가 쿠바 혁명 이후 보여줬던 강력한 상징 전략의 일환일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집권 중 시가와 턱수염, 군복으로 상징되는 패션으로 전 세계에게 강렬한 인상을 줬다. 군복에다가 턱수염을 하고 시가를 입에 문 카스트로의 강렬한 마초적인 이미지는 ‘제국주의’에 단호히 맞서는 쿠바의 상징이었다.
이런 강렬한 이미지를 뿜어내던 카스트로가 정반대의 누추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트레이닝 복 패션으로 180도로 돌아섰다. 그의 퇴임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권력에서 물러난 그가 그런 강렬한 이미지의 패션을 고집한다면, 자신의 힘을 계속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승계한 동생 라울 카스트로 등 현 집권층을 배려한 것이란 해석이다. 자신은 이제 권력에 물러났고, 그저 하나의 서민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동네 할아버지의 트레이닝 복 패션으로 상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평상복을 입으면 되는데 왜 트레이닝 복인가? 양복 등 정장은 서구의 부르조아 문화를 상징한다는 그 특유의 문화적 거부감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이와는 다른 해석도 있다. 그가 정장을 안입고, 누추한 트레이닝 복으로 외국 정상들을 만나는 것은 우월감의 과시라고 온라인 잡지 <슬레이트>는 지적했다. 즉, 그가 만나는 외국 정상들에게 정장을 빼입는 등 격식을 차려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퇴임 이후 그를 찾아오는 정상들은 자신을 예방하는 것이고, 자신은 이들의 예방을 그저 받아주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슬레이트>는 카스트로를 예방하는 외국 지도자들은 그가 집권할 때 고작 어린이었다며, 카스트로가 그들을 위해 정장을 차려입을 의무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카스트로의 아디다스 트레이닝 복 패션에 대해 아디다스 쪽은 지난 2006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고만 말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카스트로가 트레이닝 복 패션으로 자신이 다른 지도자들과는 여전히 차원이 다른 인물임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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