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케인 “지지 철회” 등 공화당 주류들 비난 쏟아져
‘러닝메이트’ 펜스 부통령 후보도 “용납할 수 없어”
트럼프 “사과하지만 사퇴는 없다” 버티기
공화당, 현실적으로 ‘후보 교체’ 어려워
트럼프와 거리두기 하면서 ‘4년 뒤’ 기약할 듯
‘러닝메이트’ 펜스 부통령 후보도 “용납할 수 없어”
트럼프 “사과하지만 사퇴는 없다” 버티기
공화당, 현실적으로 ‘후보 교체’ 어려워
트럼프와 거리두기 하면서 ‘4년 뒤’ 기약할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의 심각한 ‘음담패설’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공화당 안에서 사퇴압박과 거리두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트럼프는 “사퇴는 없다”며 버티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트럼프가 낙마하고 공화당이 새로운 후보를 옹립할 가능성은 낮지만, 트럼프와 공화당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은 8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매케인 의원은 “나는 우리당(공화당)에서 지명된 후보(트럼프)를 지지할 수 있기를 원했다”며 “그러나 성적 모욕에 대한 허풍, 여성 비하적인 언사가 폭로된 이번주 트럼프의 행동은 그에 대한 조건부 지지를 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공화당 권력서열 3위인 존 튠(공화·사우스다코타) 상원 상무위원장도 트위터에서 “지금 당장 트럼프는 후보를 사퇴하고 (부통령 후보인) 마이크 펜스가 우리 당의 후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권력서열 1위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트럼프 비판에 나섰다. 라이언 의장은 이날 자신의 지역구인 위스콘신주에서 트럼프와 함께 유세를 펼치기로 했으나, 트럼프 초청을 즉각 취소했다. 라이언 의장은 트럼프의 행동이 “구역질이 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라이언 의장은 트럼프에 대한 지지 철회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와의 거리두기를 하겠다는 분명한 의사표시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밖에 “혐오스럽고 용납이 안된다”(미치 매코널 원내대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충격적이고 부적절한 발언”(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정당화가 불가능하다”(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도저히 지지할 수 없는 사람”(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 “트럼프의 극도로 불쾌한 발언이 미국의 얼굴에 먹칠하고 있다”(밋 롬니 2012년 대선후보) 등의 비난 발언이 이어졌다.
제일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진 것은 트럼프의 러닝메이트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 후보다. 펜스는 성명을 통해 “남편으로 아버지로서, 어제 공개된 11년 전 비디오에서 트럼프가 묘사한 발언과 행동에 상처를 받았다”며 “나는 그의 말을 용납할 수도 없고 방어할 수도 없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그는 이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인들에게 유감을 표시하고 사과한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그의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또한 트럼프가 2차 텔레비전 토론 전에 진심으로 그가 무엇인가를 보여줄 기회를 갖기를 학수고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를 옹호하자니 함께 도맷금으로 넘어가게 되고, 그렇다고 부통령 후보로서 그를 과도하게 비난할 수도 없는 어려운 상황임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이런 비난과 사퇴 압력 속에서도 사과는 하되 “후보 사퇴는 없다”며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트럼프는 7일 성명을 통해 “누군가 상처를 받았다면 사과한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녹음파일 공개 직후 “탈의실에서 주고받는 그런 농담이고, 오래 전에 있었던 사적 대화다.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은 골프장에서 내게 훨씬 심한 말도 했고, 나는 거기에 미치지도 못한다”며 이렇게 밝혔다. 어찌됐든 트럼프가 ‘사과한다’(Apologize)라는 말을 쓴 것은 거의 처음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날(8일) 오후 5시 자신의 거처인 뉴욕 트럼프타워의 1층 로비에 나타나 기자들에게 ‘그대로 선거전에 남아있을 것이냐’는 질문에 “100%”라고 답했다. 트럼프는 또한 <월스트리트 저널><워싱턴 포스트> 등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절대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트럼프의 부인인 멜라니아도 성명을 통해 “남편이 사용한 말들은 용납할 수 없고 나한테도 모욕적”이라면서 “(그러나) 이것이 내가 아는 지금의 그 남자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옹호했다. 멜라니아는 이어 “그는 지도자의 가슴과 마음을 갖춘 사람”이라면서 “국민이 그의 사과를 받아주고, 미국과 세계가 직명한 중요한 이슈들에 초점을 맞추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공화당 전국위원회(RNC)가 현재 ‘후보교체’라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관련 규정인 ‘규약 9조’까지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규정상이나 현실적으로 지금 시점에서 후보 교체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규약 9조는 후보 지명자가 “사망이나 거부, 기타 등등”의 이유로 후보 공석이 생길경우 전국 위원회가 이를 채울 권한을 갖고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이반 사건을 ‘기타’의 범주에 포함시켜 트럼프를 축출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적으로도 트럼프를 축출하기는 쉽지 않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거의 광적이다. 엄청난 후폭풍이 몰려올 수 있다. 또한 트럼프를 교체할 경우 공화당 분열은 재기 불가능할 수준으로 빠질 수 있다. 대타로 나올 후보가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여러 상황을 두루 감안하면 공화당 주류들은 트럼프와의 거리두기를 본격화하면서 4년 이후를 대비하는 장기전을 준비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물론 엄청난 대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더욱 힘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이에 앞서 트럼프가 지난 2005년 농도짙은 음담패설을 주고받은 녹음파일이 7일(현지시각) 공개됐다. 녹음파일에는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저속한 속어까지 동원하며 여성을 성적 수단으로만 간주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트럼프와 미 연예매체 <액세스 할리우드>의 빌리 부시가 지난 2005년 여러 사람이 있는 가운데서 버스 안에서 나눈 내용이었다.
트럼프는 버스 안의 사람들에게 과거에 유부녀를 유혹하려 한 경험담을 얘기하기 시작한다. 그는 “그녀한테 접근했는데 실패했어. 솔직히 인정해”라고 말한다. 트럼프는 이어 “접근을 시도했는데, 그녀는 결혼한 상태였어”라고 말했다. 상대가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그녀를 가구 쇼핑에도 데려갔어. 그녀가 가구를 원했기 때문이야. 나는 말했지. 더 좋은 가구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겠다고 말이야”
그는 이어 “XX처럼 그녀에게 접근했어. 그렇지만 성공하지는 못했어.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녀를 보니까, 커다란 가짜 가슴을 달고 있고, 얼굴도 완전히 바뀌어 있었어”라고 말했다.
트럼프와 부시는 녹화장에 도착할 무렵 마중 나와 있던 여배우 아리안 저커를 목격한 뒤 음담패설을 계속 이어간다. 트럼프는 “와”라는 감탄사를 내뱉은 뒤 “혹시 키스를 할지도 모르니 (입냄새 제거용 사탕인) ‘틱택’을 좀 써야겠어”라면서 “나는 자동으로 미인한테 끌려. 그냥 바로 키스를 하게 된단 말야. 그건 자석과도 같아. 그냥 키스해 버려. 기다리지도 않아”라고 자랑한다.
트럼프가 “당신이 스타면 그들(미녀)은 뭐든지 하게 해줘”라고 주장하자, 부시는 “맞아. 원하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맞장구를 친다. 이에 트럼프는 다시 한번 “XX를 움켜쥐고, 어떤 것도 할 수 있어”라며 허풍을 떤다. 특히. 여성 성기의 속어적 표현으로 p로 시작하는 마지막 단어 XX이 크게 문제가 됐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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