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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미·영, 가자지구 아랍인 집단학살 공모”…유엔 인권전문가 사임

등록 2023-11-01 13:48수정 2023-11-01 19:55

31일 미국 상원 세출위원회에 출석한 토니 블링컨 장관 뒤에서 방청객들이 피를 뜻하는 붉은색 물감을 칠한 손을 들어 보이면서 가자지구 휴전을 촉구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31일 미국 상원 세출위원회에 출석한 토니 블링컨 장관 뒤에서 방청객들이 피를 뜻하는 붉은색 물감을 칠한 손을 들어 보이면서 가자지구 휴전을 촉구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유엔 고위 인사가 자기 조직의 무능함과 미국·영국의 방조를 비난하며 사임했다.

영국 가디언은 31일 크레이그 모키버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뉴욕사무소장이 볼커 튀르크 인권최고대표에게 유엔과 미국 등이 팔레스타인 민간인 집단 학살을 막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서한을 보내고 사임했다고 보도했다. 1992년부터 유엔에서 일한 인권 전문가인 모키버는 정년을 앞둔 상황이었다.

가자지구에서 일한 적 있는 모키버는 지난 28일 보낸 장문의 서한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눈앞에서 대량 학살이 벌어지고, 우리가 복무하는 조직은 그것을 전혀 중단시킬 수 없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유엔이 르완다 투치족, 보스니아 무슬림, 이라크 야지디족, 미얀마 로힝야족 집단 학살 사례처럼 이번에도 실패하고 있다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대규모 학살은 종족적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식민지 정착민 이데올로기에 뿌리가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의 행동 배경에 아랍인들을 제거하려는 인종주의적 태도가 깔려 있다는 주장으로, 그는 이번 공격은 “집단 학살의 교과서적 사례”라고도 했다.

또 미국·영국과 다른 유럽 국가들도 민간인 보호를 규정한 제네바협약 준수를 외면하고, 이스라엘에 무기를 제공하는 동시에 정치적·외교적 보호막도 돼주며 “끔찍한 공격에 전적으로 공모하고 있다”고 했다. 이 서한은 가자지구 보건부가 사망자가 8500명이 넘었다고 집계하고, 자발리아 난민촌 공습으로 사상자 수백명이 발생한 가운데 공개됐다.

가자지구의 비극을 더 이상 키워선 안 된다는 국제적 압력이 높아지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휴전에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접지 않고 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31일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지원을 논의한 상원 세출위원회 청문회에서 “하마스가 한 행위를 반복하게 만들 수 있다”며 휴전에 부정적 의사를 밝혔다. 청문회장에서는 방청객 20여명이 손에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 물감을 칠하고 “당장 휴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다만 가자지구 공격을 방조하면서도 ‘민간인 희생 최소화’를 주장해온 미국은 안팎의 여론 악화를 의식한듯 기존 입장을 더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무부는 블링컨 장관이 이날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가능한 예방 조처”를 강조했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오늘 3일 전쟁 발생 이후 두번째로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하지만 이스라엘방위군(IDF)이 이날 감행한 자발리아 난민촌 공격처럼 민간인 집단 거주지를 공습하는 식의 작전을 멈출지는 미지수다.

헤르초그 대통령은 이날 비비시(BBC)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군은 민간인 희생 축소에 “큰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자지구 사망자 8천여명 중 여자와 어린이가 70%라는 지적에 대해선 누구도 그들이 대가를 치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희생자의) 숫자로 측정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남미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잇따라 강력한 외교적 항의를 했다. 볼리비아는 국교 단절을 선언하고, 칠레와 콜롬비아는 주이스라엘 대사를 소환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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