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을 하루 앞둔 17일 가자지구 병원에 대한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500명 이상이 숨졌다고 팔레스타인 당국이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의 로켓에 의한 것이라며 공격 사실을 부인하는 가운데, 단일 공격으로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면서 또다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참사의 여파로 바이든 대통령과 이슬람권 주요국 정상들과의 회담이 취소됐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이날 가자지구의 알아흘리아랍 병원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최소 500명이 사망했으며, 희생자 숫자는 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병원에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피해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대피해 있었다. 병원과 국제기구 시설 등은 대표적인 공격 금지 대상이다.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20초짜리 동영상에는 어둠 속에서 굉음을 내며 날아온 보이지 않는 물체가 병원을 타격해 화염이 치솟는 모습이 담겼다. 이 병원은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남쪽으로 떠나라고 요구한 가자지구 북부에 있는 병원 20곳 중 하나다.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내어 자신들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인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가 쏜 로켓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우리 시스템으로 분석한 것을 보면, 병원이 공격당했을 때 적이 이스라엘을 향해 쏜 로켓이 병원 부근을 지나갔다”고 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가자의 야만적 테러리스트들이 병원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 행정부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는 로켓이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른다”고 에이비시(ABC) 방송에 말했다.

지난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촉발된 이번 충돌로 민간인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인 1400여명이 숨지고,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과 포격으로 팔레스타인인 28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엔은 지상전을 예고하며 가자지구 북부를 떠나라는 이스라엘의 경고에 팔레스타인인 60만명이 피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남부에도 계속 공습을 가하고 있다.

이번 대규모 인명 피해는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지지 의사를 분명히 하려고 18일 이스라엘을 방문하기 직전에 발생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 방문 직후 이슬람권 주요국 지도자들을 만나 협조를 구하려던 일정이 이번 사건으로 취소돼 그에게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히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만나고, 이후 요르단으로 이동해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만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요르단 외무부는 이날 가자지구 병원 참사를 이유로 네 정상의 만남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발표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로 출발하는 전용기를 타려고 백악관을 나선 직후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 등 미국 행정부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 의사를 확실히 밝히면서도 “이스라엘은 전쟁 규칙을 준수할 것”이라며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피란민들이 모인 곳에서 폭발로 대규모 사상이 발생하면서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됐다. 특히 이번 공격의 책임이 이스라엘 쪽에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미국도 국제사회에서 큰 정치적 부담을 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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