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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미, 노골적 반도체 줄세우기…“보조금 받으려면 중국 투자 말라”

등록 2023-03-01 16:55수정 2023-03-02 02:30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 AP 연합뉴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 AP 연합뉴스

미국 상무부가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보조금의 지급 조건으로 군사·안보 분야에 대한 우선 공급과 중국 투자 확대 금지를 강조하는 신청 지침을 내놨다.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을 포함해 보조금을 따내려는 반도체 업체들은 대중 사업 기회를 사실상 포기해야 하는 까다로운 수급 조건을 맞춰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미국 상무부는 28일(현지시각) 390억달러(51조6750억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 보조금과 관련한 투자 의향서 접수를 시작하면서 평가 기준을 설명하는 안내문을 공개했다. 상무부는 이 문서에서 ‘경제·국가 안보’를 보조금 제도 도입의 주요 취지로 설명하면서 “미국 국방부와 안보 분야가 반도체를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을 우선적 평가 기준으로 제시했다.

상무부는 이어 “엄격한 재정적 분석”을 거쳐 보조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여러 조건을 내걸었다. 안내문은 1억5천만달러 이상 보조금을 받는 곳은 상무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설정된 것보다 많은 이윤을 얻게 되면 미국 정부와 이를 나눠야 한다고 했다. 또 보조금을 주주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에 쓰는 것은 허용하지 않고, 5년간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보조금을 받은 업체가 이윤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할 계획이 있으면 평가에 불리하게 반영하겠다는 뜻이다. 상무부는 투자금 조달 능력도 따지고, 미래 투자 계획 등 생산시설의 장기적 운영 전망도 평가하겠다고 했다.

노동력과 관련해서는 높은 수준의 아동 돌봄 시설 설치를 요구한다고 했다. 숙련 인력 개발·확보, 저소득층 고용 계획도 제출해야 한다. 상무부는 노동력 개발을 위해 업체가 지방정부, 교육기관, 노조 등과 협력할 것을 권고한다고 했다. 이 밖에 미국산 건설 자재와 재생에너지 사용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상무부는 이런 평가를 거쳐 선정된 업체는 투자액의 5~15%를 직접 보조금으로 받을 것이라고 했다. 또 직접 보조금에 대출과 대출 보증까지 더하면 총투자금의 35% 미만이 지원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조금 수급 대상 선정까지는 투자 의향서, 사전 신청서, 자료 제출, 본신청서 제출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중국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투자 제한 장치’(가드레일)에 관해서는 “신청 업체가 알면서도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를 일으키는 우려 대상국과 공동 연구나 기술 사용 허가 등의 활동에 연루되면 보조금 전액을 반납해야 한다”는 엄격한 조건을 내걸었다.

또 우려 대상국에서는 10년간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대하지 않겠다는 데 동의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말하는 우려 대상국은 중국을 의미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런 조처들로 인해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분단이 한층 더 깊어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상무부는 보조금 제도의 기반이 되는 ‘칩과 과학법’의 가드레일 조항에 대한 구체적 지침은 곧 따로 발표하겠다고 했다.

170억달러를 들여 미국 텍사스주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삼성전자는 보조금 지급 신청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50억달러 투자 방침을 밝힌 에스케이하이닉스도 신청 여부를 저울질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 티에스엠시(TSMC)는 지난해 12월 애리조나주 등에 400억달러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힌 상태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은 반도체 투자 의향서 접수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목표는 미국을 첨단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모든 기업이 충분히 그런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시엔엔>(CNN) 인터뷰에서는 “우리와 중국의 경쟁이 매우 달아올랐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라며, 중국의 위협을 받는 대만에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이 몰려 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혁신 능력에서 중국과 나머지 세계를 앞서기 위해 미국과 미국인, 미국의 능력에 투자하는 게 세계의 지도국으로서 우리 전략의 핵심”이라고 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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