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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철근도 미국산 써야 하나…미 반도체 보조금 조건에 삼성·SK ‘난감’

등록 2023-03-01 17:37수정 2023-03-09 17:49

전문가 “전기차에 반도체마저 불이익 우려”
중국 투자제한 등 ‘가드레일’은 수주 내 발표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 오스틴팹.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 오스틴팹. 삼성전자 제공
미국 상무부가 공개한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보조금 지급 범위와 조건 등을 두고,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현지 전기자동차 생산시설이 없는 현대자동차그룹이 한동안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반도체 기업들마저 보조금을 위한 초과이익 환수 등 여러 조건은 물론 중국 생산시설 투자 여부 등 복잡한 셈을 고민해야 하게 됐다.

미국 상무부가 28일(현지시각) 공개한 반도체 투자 보조금 지급 조건 등을 보면, 지급 대상에 반도체 연구·개발은 물론 설계·생산·패키징에 이르기까지 반도체 모든 과정이 포함됐다. 기술 수준은 첨단은 물론 보급형 반도체까지 아울렀다. 사실상 반도체 공급망 전체를 자국 안에 유치하겠다는 욕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이다.

동시에 보조금을 1억5천만달러 이상 받은 기업이 애초 제출한 기대 수익을 크게 초과하는 이익을 내는 경우 지급한 보조금을 75%까지 환수하는 조건도 달았다. 공장 건립 시 미국산 철강만 쓰고, 자사주 매입 및 배당 제한, 보조금 사용 내용 확인, 중국과 협력 시 보조금 반환, 인력 훈련 및 보육 서비스 제공 등도 고려사항이었다.

한국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양희 대구대 교수(경제금융학과)는 “이번 보조금 조건으로 보면 미국 안으로 (반도체 관련 사업을) 다 빨아들이겠다는 의도”라며 “중국 생산 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들이 최악의 경우 중국 시설은 잃고 미국에선 제대로 투자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분업으로 이뤄진 반도체 생태계가 미국만의 생태계로 전환되면 비용 하락 효과가 사라진다. 오른 비용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 기업에 적용되는 10년 간 중국 투자 제한에 대한 구체 내용(가드레일)은 이날 공개되지 않았다. 수주 안에 발표될 가드레일 내용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위기감은 더 커질 수 있다.

앞서 국내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한 자국 전기차 회사 우대 및 전기차 생산시설 자국 유치 욕심에 불이익을 받았다. 현대차는 미국 현지에 전기차 생산시설이 없어 당분간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른 세제 혜택을 못 받는다. 특히 국내 배터리업체들마저도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가 중국 배터리 제조사 시에이티엘(CATL)과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포드가 공장을 100% 소유하고 시에이티엘은 기술만 제공하는 방식으로 법안을 우회하며, 중국산 배터리가 제외될 수 있다는 기대가 물건너갔기 때문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더욱 복잡해진 상황에 “조건이 과하다”면서도 말을 아꼈다. 당장 삼성전자는 지난해 텍사스에 짓기로 한 생산시설 투자에 대한 보조금을 이날부터 60일 안에 신청해야 해 시간이 없다. 연구개발 분야에 투자할 계획인 에스케이하이닉스는 6월부터 신청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기업의 선택에 달렸지만, 초과이익 환수 등 미국 투자에 대한 마이너스 요인이 생겼다”며 “극단적인 경우 보조금을 안받는 경우를 포함해 경우의 수를 따져보겠다는 입장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계획이 제대로 실현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자사주 매입 제한 등은 이미 공개된 것이지만, 초과이익 환수 등 추가된 조건으로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것인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앞서 대만 티에스엠시(TSMC) 창립자 모리스 창 전 회장은 지난해 4월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제조를 늘리려고 하지만 심각한 인력 부족과 높은 인건비로 경쟁력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아직 가드레일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양희 교수는 “전기차와 반도체 모두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 한국 기업이 없는 반도체 생태계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이 주장한대로 이른바 ‘자유진영’ 안에서 자유무역을 보장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이날 참고자료를 내어 “우리 기업 경영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는 사항에 대해 미 상무부 등 관계 당국에 우리 기업들의 입장을 적극 개진해 왔다”며 “가드레일 세부 규정 마련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미 관계 당국과 계속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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