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 주지사가 플로리다 탬파에서 지난 8일 중간선거에서 재선이 확정된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8일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최대 승자는 론 디샌티스(44) 플로리다 주지사이다. 공화당의 ‘붉은 물결’이 현실화된 곳은 플로리다뿐이었다. 이를 주도한 디샌티스는 공화당에서 부동의 차기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위협하는 주자로 단번에 떠올랐다.
디샌티스는 이번 주지사 선거에서 19%포인트, 150만표 차로 승리했다.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 사상 40년 만에 최대 표차이다. 그는 2018년 선거에선 재검표 끝에 0.4%포인트, 3만2천표 차로 신승했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표적 경합주로 꼽히는 플로리다는 그의 재임 4년 만에 ‘붉은 물결’로 물들었다. 공화당은 연방 하원의원 4석을 민주당에서 빼앗아 왔다. 주정부 선출직 모두를 공화당이 독식했다. 최소 표차는 16%포인트였다. 주의회 상·하원에서도 공화당이 압도적 다수가 됐다.
2020년 대선 때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플로리다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3.3%포인트 차로 승리했다. 경합주 중 하나로 꼽히던 플로리다에서 상전벽해의 정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만 보면, 지난 20년 동안 민주당과 공화당이 차례로 집권했던 플로리다는 이제 공화당의 아성이 됐다.
이 변화의 주역이 디샌티스 주지사이다. 지난 선거 때 트럼프 지지를 내걸고 신승하며 대표적인 ‘트럼프의 아이’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후 트럼프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정치적 수사에서는 절제되면서도, 다부졌다. 또 실용적인 정책 집행력으로 공화당의 보수적 가치를 정책으로 구현했다.
그가 부상하게 된 계기는 코로나19 사태이다. 그는 개인의 자유를 내세우며, 영업 제한, 마스크 착용, 백신 접종 등 일상 활동을 제한하는 조처를 거부했다. 이런 자유방임적 조처로 플로리다에서는 코로나19로 8만2천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플로리다에선 정상적인 일상 활동이 가능해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개인 사업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 주지사가 주지사 후보 시절이었던 지난 2018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함께 서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그가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넓힐 수 있었던 것은 임신, 총기, 교육 등에서 보수적 가치를 주장한 ‘문화 전쟁’이었다. 그는 트럼프와는 달리 절제되면서도 강력한 언어로 보수적 가치를 주장하고, 이를 정책으로 실행했다. 그 결과, 공화당 지지층뿐만 아니라 무당파층, 더 나아가 보수적 민주당 지지층까지 결집시켰다. 그는 학교에서 성 정체성 교육 금지, 임신 15주 이상이면 성폭행 등과 상관없이 임신중지 금지, 총기 소유 완화, 민주당 주지사가 있는 주로 불법이주자 호송 등의 정책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끌었다.
그는 정치와 사회를 양극화하는 증오를 내뱉는 ‘꼬마 트럼프’라고 비난을 받았으나, 보수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보였다. 그는 선거 전에 플로리다를 강타한 허리케인 이언의 피해를 수습할 때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등 민생 문제에서는 초당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 이번 선거 대승을 일구는 데 기여했다. 선거 전에 트럼프는 그가 ‘대선에 출마하면 좋지 않은 일을 폭로할 것’ 등의 견제를 했었다. 디샌티스는 더 이상 ‘트럼프의 아이’가 아닌데다, 트럼프의 위력이 그에게는 무력함을 보여줬다.
실제로, 선거 직후 유고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지지 성향의 유권자층에서 디샌티스는 차기 공화당 대선 후보로 42%의 지지를 얻어, 35%의 트럼프를 눌렀다. 정치 전문지 <힐>의 보수적 칼럼니스트 마이라 애덤스는 “디샌티스는 부담 없는 트럼프, 광기 없는 트럼프, 기소 위기에 처하지 않은 트럼프”라며 ‘공화당의 미래’라고 말했다.
의회에서 트럼프의 최대 후원자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디샌티스가 오는 밸런타인데이를 기해서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디샌티스와 트럼프의 격돌은 총기, 성교육, 임신 등에서 보수적 가치를 주장하는 문화 전쟁이 보수우파 진영에서 더 가열차게 전개될 것임을 예고한다. 디샌티스의 가세로 미국의 정치·사회 양극화는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