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5일 페이스북에 올릴 동영상 연설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인터넷 동영상으로 항전과 지지를 호소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아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6일 화상으로 미국 상·하원 연설을 한다. 피침략국 지도자가 인터넷 연결로 원조국 의회에 직접 호소하는 이례적 장면이 또 펼쳐지게 됐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14일(현지시각)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런 계획을 밝히면서 “용감하게 민주주의를 지키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지지하는 우리의 뜻을 전달하기를 고대한다”고 밝혔다. 연설은 텔레비전으로도 중계돼 미국 여론에도 직접 호소하는 효과가 예상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달 5일에도 미국 의원 280여명을 상대로 인터넷 화상회의 서비스를 이용해 지원을 호소했다. 이번에는 미국 의원들 전원을 대상으로 공식적 연설을 하는 셈이다. 러시아의 제공권 우위에 맞서기 위해 자국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하거나 전투기를 달라고 요청해온 그는 이번에도 전투기나 방공 무기 등 군사원조 확대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폴란드는 우크라이나가 요구하는 옛 소련제 미그-29 전투기 28대를 독일의 미군기지를 경유해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의 전투기 제공 가능성을 띄우던 미국은 입장을 바꿔,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주면 러시아가 지나치게 도발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며 뒷걸음쳤다.
하지만 신중한 행정부와 달리 미국 의회에서는 전투기 제공 요구가 상당한 편이어서 이번 연설이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미국 의회는 안보 문제는 ‘대통령의 영역’으로 여겨온 전통과 달리 석유 금수나 ‘정상무역관계’ 단절 등 강경한 대러 정책을 선도하고 있다.
이번 연설은 수도 사수를 외치며 키이우를 떠나지 않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연설 솜씨와 인터넷을 효과적 항전 수단으로 쓰고 있음을 재확인해줄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기립박수를 받은 9일 영국 의회 화상 연설에서 연설 상대에 맞춰 셰익스피어의 문장 “죽느냐 사느냐”를 인용했다. 또 “우리는 숲에서도, 벌판에서도, 해안에서도, 거리에서도 싸울 것”이라고 했다. 2차대전 때 윈스턴 처칠의 연설(“우리는 해변에서 싸워야 한다. 우리는 활주로에서 싸워야 한다. 우리는 벌판과 거리에서 싸워야 한다. 우리는 언덕에서 싸워야 한다. 우리는 절대 항복하지 않는다”)에서 착안한 표현이다. 그는 15일 캐나다 상·하원 화상 연설도 한다.
한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과시와 나토 회원국들에 대한 안보 공약 재확인을 위해 유럽 방문을 검토 중이라고 <엔비시>(NBC) 방송이 보도했다. 이 방송은 검토가 초기 단계라면서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동유럽 방문(9~11일) 수행원들 일부가 잔류해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엔엔>(CNN)은 바이든 대통령이 폴란드 등을 들르는 것을 백악관이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나토의 유럽 쪽 정상들이 이르면 다음주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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