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각)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서부 군사기지를 공격한 뒤 건물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 갈무리
지난달 24일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전’이나 ‘수습’이냐를 가르는 중대 분수령에 접어들었다. 14일 ‘두 회담’의 결과에 따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러시아의 전면 전쟁이 발생할 수도, 극적인 외교적 해법이 도출될 수도 있다.
이번 전쟁엔 그동안 두번의 고비가 있었다. 러시아는 개전 첫날부터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 공수부대와 기갑 병력을 집중하는 ‘전격전’으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을 제거하려 했다. 젤렌스키는 개전 둘째 날 키이우의 밤거리에서 ‘지도부가 수도에서 결사항전하고 있다’며 국민들의 항전 의지를 북돋웠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놀라운 저항 의지를 보여주며 러시아군의 예봉을 꺾었다. 미국과 유럽도 강한 단결력을 과시하며 러시아를 국제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퇴출하는 등 가혹한 경제 제재를 쏟아냈다.
두번째 고비는 4일 러시아군이 유럽에서 가장 큰 우크라이나 남부의 자포리자 원전을 공격하며 시작됐다. 인류 공멸을 의미하는 ‘끔찍한 사고’의 가능성을 알면서도 우크라이나에 전력 공급을 끊으려 한 러시아의 모습에 국제사회는 경악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거듭 우크라이나의 △비군사화 △비나치화 △중립화 등을 이루겠다고 했고, 11일 회견에선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것이고, 결국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인들의 항전 의지를 분쇄하기 위해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공격’을 이어가는 중이다. 공격은 수도 키이우, 제2도시 하르키우, 아조프(아조우)해에 면한 동남부 도시 마리우폴 등에서 지금도 이어진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습·폭격을 이겨내려면, 나토가 자국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을 우려하며 난색을 표하는 중이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수석보좌관이 14일 4차 회담에 대한 전망을 밝히고 있다. 포돌랴크 보좌관 트위터 갈무리
그러는 사이 세번째 고비가 다가왔다. 러시아군은 며칠 안에 키이우 등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불가피한 ‘대공세’에 나설 태세다. 세르게이 럅코프 러시아 외교차관은 12일 서구의 더 이상의 군사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는 차량들이 “적법한 목표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13일 폴란드 국경에서 불과 20㎞ 떨어진 야보리우 기지에 미사일 30여발을 퍼부었다. 이곳은 미국·캐나다 등 외국 군사고문이 우크라이나군을 훈련시키는 ‘평화유지안보국제센터’가 있는 곳이다. 미국 언론들은 같은 날 러시아가 중국에 군사장비와 추가 경제 원조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고립된 키이우에서 끔찍한 유혈사태가 발생하고 중·러의 결속이 강해지면, 전쟁의 향방은 예측할 수 없게 된다. 미 정계에선 이미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공급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커지는 중이다.
14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좌관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의 회담 사실을 알리는 백악관 보도자료.
임박한 파국을 피하기 위해 14일 두개의 회담이 열린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수석보좌관은 트위터를 통해 14일 4차 정전회담이 화상회담으로 열린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현실을 좀 더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며칠 안에 일정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대표단 소속인 레오니트 슬루츠키 하원 외교위원장도 “며칠 안에 양쪽이 합의문에 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타협’을 위해 나토 가입을 미룰 수 있다는 속내를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은 “최악의 상황이 아직 우리 앞에 있다”며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미국 백악관도 같은 날 이탈리아 로마에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양제츠 중국 외교 담당 정치국원이 만난다고 전했다. 두 회담은 인류를 수렁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길윤형 기자, 신기섭 선임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