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30개월, 10개월 된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신세계백화점 한지연(33·브랜드 디자인팀) 대리한테 2013년 가을은 직장생활에서 가장 큰 고비였다. 첫아이 임신과 함께 지독한 입덧이 왔다. 경력으로 입사한 지 불과 1년 남짓한 때였다. “새 직장에 겨우 적응할까 말까 하는 시점이었는데 당혹스러웠죠.” 도저히 견디면서 일할 수가 없어 사표 낼 결심을 하고 인사부서를 찾아갔다. “담당 직원이 출산휴직 제도가 있다는 걸 알려줬어요. 육아휴직과는 별도로 임신기간에 쓸 수 있는 휴직이 따로 있다고요. 단지 입덧과 체력문제 때문에 그만두고 싶은 거라면 출산휴직을 써보라고 권유해서 임신 3개월에 휴직을 들어갔죠.”

신세계의 행복일터 정책에서 우선순위는 여성이다. 정규직원의 66%가 여성인데다 유통업 특성상 여성 고객이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여성의 맨파워 증진에 가장 큰 공을 들인다. 복지제도 중에서도 모성보호 지원 프로그램이 가장 두드러진다. 한 대리가 이용한 임신 전 출산휴직도 그중 하나다. 그가 누린 모성보호 지원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을 준비할 무렵 덜컥 둘째가 들어섰어요. 다시 극심한 입덧에 시달렸고, 출산휴직을 다시 하기는 염치가 없었죠. 회사쪽 처분에 따라야겠다고 마음먹고 연락을 했는데 첫째 육아휴직을 1년 연장할 수도 있고 둘째의 출산휴직을 쓸 수도 있으니 선택을 해서 사용하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1년 법정 육아휴직이 끝나도 원하면 1년 더 연장할 수 있는 희망육아휴직 제도가 있었다. 한 대리는 첫째의 육아휴직을 연장하고 둘째를 낳은 뒤 5개월이 지난 올해 5월에 복직했다. 휴직에 들어간 뒤 2년7개월 만에 회사로 돌아왔다. “2년 넘게 회사를 떠나 있으니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업무감각이 둔해질까 우려도 됐고요.” 신세계에는 한씨처럼 장기휴직을 마치고 돌아오는 여직원이 드물지 않다. 첫째 육아휴직이 끝나기 전 둘째를 가질 경우 5년 가까이 휴직을 쓰는 경우도 있다.

“제조업의 경우 새로운 기계설비를 도입하거나 시스템을 정비하면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지만 서비스업은 맨파워가 시작이자 끝이죠. 축적된 업무 노하우를 가진 연륜있는 여직원들이 장기근속을 하는 게 회사로서 매우 중요한 경쟁력 확보입니다. 그래서 여직원들의 요구사항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지요.” 기업문화팀 강성훈 부장의 설명이다. 2016년부터는 3개월에서 6개월까지 쓸 수 있는 난임휴직 제도를 신설했다. 취업과 결혼, 출산 연령이 높아지면서 늘어나는 난임 직원들의 목소리를 반영했다.

3, 4년씩 육아로 회사를 떠나 있다가 돌아오면 인사발령과 고과평가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실제 휴직을 퇴직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기업도 없지 않고, 지방 발령이 많은 유통업체 직원들은 특히나 예민해하는 부분이다. 이를 위해 신세계에서는 희망부서 우선배치 제도를 만들었다. 복직 직전 희망부서를 신청하고 회사에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희망대로 발령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70% 정도가 희망부서에 배치된다고 한다. 한 대리는 “출산 전에 일하던 부서에 돌아와서 일하니 빠르게 다시 적응할 수 있었다”며 “다른 사원들처럼 나 역시 업무량이 적지 않은 편이지만 퇴근해서 아이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업무 집중력이 더 좋아져서 야근 시간이 출산 전보다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