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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증권

‘3조 미수금’ 폭락 눈덩이로…펀드 환매 문의 빗발

등록 2006-01-23 18:51수정 2006-01-24 09:52

투매가 투매 불러…급락장 또 휘청
기관들 손절매 앞장 코스닥서 418억 순매도
“흐름 꺾이지 않아 장기 투자엔 적기”

‘검은 월요일’으로 불릴 만한 23일의 주가 대폭락은 지난 한주 내내 급락세에 시달렸던 주식 투자자에게 다시한번 결정타를 날렸다. 이날 주가 폭락은 국내외 증시 안팎의 온갖 악재들이 한꺼번에 불거진 탓이지만, 직접적인 수급상 요인은 무엇보다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증시 열풍 여파로 연일 사상 최대 규모로 누적된 ‘위탁자 미수금’ 탓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지난 20일 기준으로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산 위탁자 미수금은 2조9973억원으로 전날에 비해 3833억원 늘어나면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올 들어 지난 4일부터 처음으로 미수금 규모가 2조원 시대로 진입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외상매입 규모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이날 “최근의 시장 하락은 구조적인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일부 기관들의 단기적 운용형태, 그리고 시장상승을 빌미 삼아 예탁금의 5배 정도를 미수금으로 인정해 준 증권업계의 고질적인 단기 업적주의의 산물”이라고 진단했다.

증권 전문가들은 위탁자 미수금 증가가 낙폭장세에서 증시에 뇌관으로 작용하는 시한폭탄이 될 것으로 경고해 왔다.

미수금은 주가 상승기에는 더 큰 수익을 안겨주지만, 하락기에는 손실을 걷잡을 수 없이 크게 한다. 이 때문에 주가가 일단 하락하게 되면 더 큰 손실을 보기 전에 미수금 투자자는 주식을 팔 수밖에 없다. 결국 매도가 매도를 부르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코스닥시장은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올해 1월17일까지 석 달 만에 지수가 193(34.21%)이나 급등했다가, 23일까지 거래 5일 만에 다시 159.4(20.95%)가 한꺼번에 빠지는 등 극도로 불안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날 코스닥시장에서는 투신과 연기금, 은행 등 기관에서 손절매 차원에서 엔에치엔(NHN)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을 대거 내다 팔았다. 함성식 대신증권 투자전략팀 책임연구원은 “이날 코스닥시장에 일부 기관투자가들이 조만간 코스닥펀드나 중소형 펀드를 환매할 가능성이 높다는 루머가 돌면서 걷잡을 수 없이 낙폭이 확산됐다”며 “이에 따라 기관투자가들이 코스닥시장에서만 418억원어치를 순매도한 것이 수급 차원에서 악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코스닥이 63.98 폭락한 601.33으로 마감해, 9.11테러 이후 하루 최대 낙폭을 기록한 가운데 23일 증권선물거래소 직원들이 시세판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코스닥이 63.98 폭락한 601.33으로 마감해, 9.11테러 이후 하루 최대 낙폭을 기록한 가운데 23일 증권선물거래소 직원들이 시세판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전문가들은 지난해부터 증시 열풍을 몰고온 간접투자자들이 주식 펀드를 환매하기 시작할 경우, 증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치달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는 코스닥·코스피 시장의 동반 급락 소식이 알려진 이날 오후 전국 증권사 지점에 펀드 가입자들의 환매문의가 폭주하면서 일부 현실로 나타났다.

하나·신한은행의 창구 관계자들은 “환매요청이 아직 본격화하지는 않았지만, 신규가입 신청은 뚝 끊어졌다”며, “만일 주가하락이 이어진다면 환매가 환매를 불러 심각한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은 투매보다는 오히려 장기적 포석으로 펀드 가입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국민은행 서울 청담동 피비센터 김형철 팀장은 “주각 폭락에 놀라는 고객들이 많지만 단기간 폭락기에 투매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오현석 삼성증권 연구위원도 “경기 상황이나 기업 실적 측면에서 증시의 상승 흐름이 꺾였다고 볼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며 “오히려 장기투자 관점에서 지금이 펀드 가입의 적기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익림 김성재 기자 choi21@hani.co.kr

미수금 이란통상 고객이 증권회사에서 외상으로 주식을 산 뒤 갚지 않은 금액을 말하는데, 넓게는 증권회사가 고객에게 신용공여해 발생한 모든 형태의 채권을 일컫기도 한다. 미수금이 약속한 날(보통 2거래일 뒤)까지 입금되지 않으면 증권사는 해당 고객의 보유 주식을 시장에 내다팔아 미수금을 회수하는데, 이를 반대매매라고 한다.

“장밋빛 전망에 투자 나섰는데…”

‘설마 이번주까지 이어질까…’라며, 반등을 기대했던 ‘개미’들은 23일 거래소와 코스닥의 동반 폭락에 머리를 쥐어 뜯었다.

지난해 연말 장밋빛 증시전망에 이끌려 뒤늦게 주식시장에 뛰어든 개인투자자들에게 최근 일주일 사이 벌어진 폭락장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건설업체에 근무하는 조아무개(33)씨는 지난해 12월 주식투자를 반대하는 아내를 간신히 설득해 대기업 ㄷ사의 주식 2천만원어치를 매입했다. 주식투자 경험이 없는 조씨였지만, “이번 활황장세 못타면 바보”라는 동료들의 말에 결심을 했다. 반대하던 아내도 조씨가 지목한 종목의 주가가 매일 오르자 갈등 끝에, 적금 해약을 허락했다. 당시 2만1천원이던 주식은 이달 10일까지만 해도 2만7천원을 웃돌았다. 수익만 50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중간에 1천만원을 한 코스닥 기업에 더 투자했다. 이 역시 2주 전만해도 수익률 15%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조씨의 콧노래는 지난주부터 잦아들었다. 두 종목 모두 하루 1500~2000원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지난주 목요일부터 원금을 까먹기 시작했다. 23일 마감 기준으로 조씨의 평가액은 두 종목 합쳐 ‘-650만원’. 천당과 지옥을 경험한 조씨는 “사람은 많아도, 팔 때를 일러주는 사람은 없더라”고 털어놨다.

이날 오후 ‘네이버’ 증권란의 종목게시판에는 조씨처럼 ‘손절매를 해야하는지, 기다려야 하는 건지’ 답답함을 호소하는 개미들의 글이 수천건 올라왔다. “이틀만에 1천만원 까먹었다”는 네티즌이 있는가 하면, 한 네티즌은 게시판에 “파란색을 오래보고 있으니 실성하기 일보직전”이라며 “이번주 자살하는 사람이 나오는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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