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훈 ㅣ 경제팀 선임기자
어떤 목적이든 새로운 세금이 만들어질 때는 진통이 있기 마련이지만 종합부동산세(종부세)처럼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렀던 세금도 흔치 않다. 2004년 참여정부가 종부세 입법화를 추진할 당시 ‘세금 폭탄’ ‘집 가진 죄인’ ‘강남 때리기’ 등 갈등을 부추기는 온갖 자극적인 표현이 신문 지면에 등장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종부세는 여론 재판이라는 뭇매를 맞고 헌법재판소 심판까지 거치는 등 산고를 겪은 뒤에야 부동산 자산 보유 정도에 따라 납세의 형평성을 확보한 정당한 세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어느덧 햇수로 15년째를 맞은 종부세가 최근 전국의 납세자 59만여명에게 통지됐다. 고지된 세금 총액은 3조3471억원으로, 한해 전보다 58.3% 급증한 게 특징이다. 납세자별로 차이는 크지만 이른바 ‘똘똘한 한 채’(고가주택) 소유자나 다주택자 등 합계 공시가격 기준 6억원(1가구 1주택자는 9억원)을 넘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은 지난해보다 꽤 늘어난 세금을 부과받았다. 그런데 세액 고지 직후 시장의 반응은 예상 밖으로 차분하다. 언론에서 다뤄지는 관련 기사와 댓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납세자들의 거센 불만이나 반발 기류를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세수 증대나 납세자 반응은 종부세 효과의 곁가지다. 서울 등 과열지역(조정대상지역) 내 다주택자의 세율을 크게 높인 정부의 지난해 종부세 개편은 대출 규제와 함께 ‘9·13 주택시장 안정대책’의 양대 축이었다. 당시 정부 안에서도 종부세를 강화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이견으로 내홍을 치른 끝에 대책이 나왔다. 그래서 종부세의 개편 방향이 옳았는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인지에 대한 평가는 궁극적으로 이후 주택시장의 향방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게 맞다.
다행히 이번 종부세가 ‘집부자’들에게 던진 충격파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번 종부세 고지 이후 시중은행 고객 상담실이나 고가주택이 밀집한 동네의 부동산중개사무소에는 2주택 이상 소유자들의 주택 매도 상담이 부쩍 증가했다. 다주택자 처지에선 이번에 부과된 종부세 부담보다 내년 이후 더 늘어나는 세 부담에 긴장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이는 종부세의 과세표준을 결정하는 최대 변수인 주택 공시가격이 최근 집값 상승 영향으로 내년에는 또 한차례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부는 현재 단독주택 53%, 공동주택 68.1%로 낮은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내년부터 더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렇다 보니 세 부담 증가의 체감도가 가장 큰 다주택자들이 앞으로 보유 주택 수를 줄이는 자산 재구성(포트폴리오)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하지만 최근 주택시장 상황은 여전히 낙관할 수 없는 단계다. 서울 아파트값은 국세청의 종부세 고지서가 납세자들에게 발송되기 시작한 지난주에 23주 연속(한국감정원 통계)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저금리에 따른 시중의 과잉 유동성,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시행 이후 번져나간 주택공급 감소 우려 등이 시장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다만 이번 종부세 부과 소식이 알려진 뒤에는 이른바 ‘추격 매수’가 급감하고 전반적으로 관망세가 짙어져, 집값 상승세가 꺾일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현실화율이 높아지는 주택 공시가격은 문재인 정부 종부세의 완결편을 예고할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종부세가 지난 15년간 집값 안정의 방패막이로서 제구실을 보여준 적은 거의 없었다. 참여정부는 불행히도 ‘종부세 트라우마’를 남긴 채 집값 잡기에 실패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종부세를 폐지하지만 않았을 뿐 사실상 유명무실한 ‘종이호랑이’로 전락시켰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2년차인 지난해 종부세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고 그에 따른 과세가 이번에 처음 이뤄졌다. 종부세는 정상화의 길로 이제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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