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과 아들 이지호씨(오른쪽), 딸 이원주양이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빈소로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로 관심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앞으로 삼성을 어떻게 이끌어갈지에 쏠린다. 이 부회장은 2014년 이 회장이 쓰러진 뒤부터 이미 총수 역할을 맡아온 터라, 급작스러운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상속’과 지배구조 개편 한데 맞물려
이 부회장 앞에 놓인 가장 큰 위험 요인은 승계 문제와 관련한 ‘사법 리스크’이다. 현재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뇌물 사건 파기환송심과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합병·회계부정 사건 등 두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26일엔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의 국정농단 뇌물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이 예정돼 있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재산의 상속 과정도 변수다. 증권가에서는 이 회장이 가지고 있던 삼성전자 지분 4.18%를 비롯해 삼성생명(20.76%), 삼성물산(2.88%) 등의 상속재산가액이 약 18조원, 이에 해당하는 상속세만 약 10조~11조원에 이를 것으로 본다. 정대로 미래에셋대우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11월 낸 보고서에서 “이 회장 보유 상장사 지분에 대한 상속세는 약 11조원 규모”라고 예상하며 “상속 과정에서 삼성전자 보유 지분에 대한 매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과 특수관계인이 갖고 있는 지분 변동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은 6월 말 현재 그룹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은 0.7%만 들고 있다. 그의 그룹 지배력은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출자 구조에 기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17.33%)다. 현재 이건희 회장 등 삼성전자의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계열사 포함)이 가진 지분은 모두 21.36%(우선주 0.25% 포함)이나, 주요 안건에 대한 의결권은 15%까지만 행사할 수 있다.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은 대기업집단 소속 금융·보험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국내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에 대해 경영권과 관련된 주요 안건을 결의할 때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가진 주식의 15%까지만 의결권을 적용한다고 돼 있다. 의결권을 온전히 쓸 수 없는 이 회장 보유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이 부회장이 넘겨받은 뒤 매각해 상속세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상속 과정에서 지주회사 체제로의 변환 등 현재 삼성에 요구되는 ‘정상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처리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주식(8.8%)도 삼성이 풀어야 할 숙제다.
■ ‘반도체 비전 2030’ 등 경영능력 시험대 올라
코로나19와 미-중 무역갈등, 반도체 산업 지형 변화 등 경제 불확실성도 이 부회장으로선 넘어야 할 또 다른 과제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삼성전자의 올해 1~3분기 실적은 굳건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정부는 화웨이에 이어 중국 반도체 기업 중신궈지(SMIC)에도 수출 규제를 내리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짙어진 상황이다. 최근에는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10조원을 투자해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을 인수했고, 지난 9월에는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자회사인 영국 반도체 개발 기업 에이아르엠(ARM·암홀딩스)을 총 400억달러(약 47조원)에 인수하는 등 세계
반도체 산업의 지각 변동도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은 지난해 4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 및 칩설계)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다며 내놓은 ‘반도체 비전 2030’을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하는 처지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 제 자신이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에 제 이후의 제 승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6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로 이뤄진 이 부회장의 사과에서 언론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대목이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은 ‘4세 경영권 미승계’에 방점을 뒀지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별세 이후 더욱 주목되는 부분은 바로 “제 자신이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이라는 대목이다. 이 부회장은 당시 대국민 사과를 통해 아버지만큼의 경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뒤 ‘앞으로의 자신의 역할’을 강조하며 본격적인 경영 행보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이후 이 부회장은 중국 시안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찾은 것을 시작으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의 두차례 회동,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회사 에이에스엠엘(ASML) 방문, 베트남 아르앤디(R&D)센터 공사 현장 방문 등 광폭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이 회장의 별세로 이 부회장은 이제 본격적인 경영 능력 평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