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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에너지 소비 효율화·신재생 발전이 ‘폭염 악순환’ 끊는다

등록 2018-08-22 05:00수정 2018-08-22 09:14

폭염의 경고, 에너지 전환이 답이다
③ 전문가 좌담
에너지전환기획 좌담회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환 의원,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박사, 김소영 에너지자립마을 와트몰 대표, 김선교 박사, 이도헌 돼지농장주.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에너지전환기획 좌담회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환 의원,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박사, 김소영 에너지자립마을 와트몰 대표, 김선교 박사, 이도헌 돼지농장주.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참석자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전 녹색당 위원장·진행)
김소영 에너지전환마을 성대골사람들 대표
이도헌 돼지농장 성우 대표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공학박사)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전 노원구청장)

111년만의 폭염이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폭염에 놀랐던 마음마저 서둘러 보낼 수는 없다. ‘재난’ 수준의 폭염을 지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커다란 공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번 폭염은 우리가 이상기후 재난에 무방비한 상태란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제대로 된 냉방 대책도, 중장기적인 기후 대책도 마땅한 게 없었던 사회가 에어컨 하나에 기댔다. ‘마음껏 에어컨을 틀지 못하게 하는’ 전기요금 폭탄 우려가 돌출됐고, 석탄과 원자력 의존을 낮추는 에너지전환 정책은 뭇매를 맞았다.

그러나 이렇게 매년 전기를 통한 냉방에만 의존하면 지구는 계속 더 더워진다. 악순환을 끊지 못하면 올여름 재난은 곧 재앙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폭염 속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고민한 다섯 사람이 머리를 맛대봤다.

이유진 이번 여름, 더위로 정말 힘들었다. 어느새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가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생활인들의 과제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도헌 폭염이 심해지면 도시와 달리 농촌은 경제활동이 아예 멈추거나 인간과 가축, 농작물의 생명이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 한 예로, 기온이 34℃를 넘어가면 돼지 폐사가 시작된다. 우리 농장은 돼지들을 전부 새 축사로 비상 이동시키기까지 했다. 다른 농장주들도 질병과 폐사를 막으려고 하루하루가 비상이었다. 더위를 간신히 넘긴 돼지들은 충분히 성장하지 못해 출하 시기가 밀렸다. 고추, 수박, 가축 다 비슷하다. 이러면 가격이 올라 소비자들 부담도 커진다. 그런데 정부가 폭염 때 하는 거라곤 폐사 규모를 나중에 집계하는 정도다.

김소영 성대골은 행정구역상 서울 동작구 상도4·5동으로, 올해로 에너지전환을 추진한지 8년차 된 마을이다. 5만6천명, 2만5천 세대가 살고 있고, 건물 가운데 98%가 주거시설이다. 노령 인구가 많고 경제활동인구는 적다. 복합적으로 취약한 도시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그런 성대골에서는 폭염이 닥치면 집이 사람을 죽인다. 집안 온도가 한밤중이 되어도 낮아지질 않는다. 이런 곳은 물이나 선풍기 등 물품을 지원해주기 이전에, 사람들을 집에서 탈출시켜야 한다. 그런데 정부 대책을 보면 무슨 일이 나기를 기다렸다가 사후 수습만 하려는 것 같다. 하루 한번 주민센터 직원이 집을 방문하는 것은 폭염대책이 아니다.

김성환 현실과 정부 대책 사이에 간극이 큰 것은, 4~5년 임기의 국회와 정부가 먼 미래로 느껴지는 기후변화 대신 눈 앞에 있는 문제들을 우선해 다룬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올 여름, 기후변화가 더 이상 북극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란 걸 모두가 느꼈다. 교과서 속 기후 변화를 실제로 체험한 첫 해인 것 같다. 이제라도 기후이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때가 됐다. 3억년 전부터 지구에 쌓인 탄소를 산업혁명 때부터 압축적으로 사용해 문명을 발전시킨 것을 두고 ‘탄소 문명’이라고 하는데, 이런 방식의 성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일 때다.

이상기후에 무방비 확인
이도헌 “34도 넘으면 돼지 폐사…정부는 사후집계 정도뿐”
김소영 “뜨거운 집이 사람 잡는데, 일난 뒤에야 수습대책”

전력수급·전기요금 논란만
김성환 “전기요금 산업용·가정용 불평등…대폭 손질 시급”
김선교 “대기업에 에너지저장시스템 등 구축 나서게 해야”

효율적 수요관리·설비 시급
김선교 “대기업 절전 약정제, 정부가 적극 발동할 필요”
김성환 “태양광 등 에너지제로주택 인센티브 정책 박차를”

■ 폭염대책은 없고 전력수급·전기요금 논란만

이유진 그런데 올 여름 언론이 처음 등장시킨 것은 블랙아웃 공포와 전기요금 폭탄 우려였다. 이런 불안 사이를 원자력 업계가 파고들어 ‘기승전 탈원전 때문’ 식의 주장을 쏟아냈다. 전력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봤나.

김선교 사실관계부터 짚으면 블랙아웃 공포는 과도하게 조장된 면이 있다. 일부 아파트나 주택에서 발생한 정전은 전력공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변압기 등 설비가 오래돼서다. 또 최고전력수요가 9248만㎾h로 최고점을 찍었던 지난달 24일에도 공급 예비력은 709만㎾h, 그러니까 원전 7기 용량에 가까웠다. 전력시장 운영규칙에 따라 ‘주의’ 경보 단계, 즉 ‘이제부터 좀 예의주시해서 상황을 보자’는 기준인 500만㎾h에 진입하려면 여유가 꽤 있었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이 예비율이 10% 아래로 내려가자 수급불안 우려를 제기한 것은, 예비력과 예비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라고 본다. 공급예비력이란 가동할 수 있는 발전기를 모두 돌릴 때 생산되는 전력에서 그 날의 최고 전력수요를 뺀 값이다. 예비율은 생산 가능 전력 총량 대비 예비력을 뜻한다. 평소에는 30~40%인 예비율이 7~8%가 되자 위기라고 오해를 한 듯 한데, 위기의 기준은 예비율이 아니라 예비력으로 봐야 한다. 최근 몇년 전력설비가 크게 늘어 예비율이 10%라도 원전 8~9기 용량의 예비력이 있는 상태다.

저는 석탄발전과 원전은 요즘 퇴출되고 있는 ‘플라스틱’과 비슷한 것이라고 본다. 환경을 오염시키고 위험하지만 당장 안 쓸 수는 없다. 기술개발로 탄소와 핵폐기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피크(전력수요 최고점) 수요를 감당하자고 설비를 늘리는 것은 굉장한 사회적 낭비다. 그보다는 차츰 태양광 풍력 비중을 늘리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김소영 수급불안 다음이 전기요금 폭탄 불안이었는데, 논란이 커지자 정부가 1만~2만원을 한시적으로 깎아주는 대책을 내놨다. ‘오히려 기분이 나쁘다’고 누가 그러더라. 그거 받는다고 흔쾌하지 않다는 것이다.

김성환 사람들의 전기요금 불만을 깊게 들어다 보면, 실은 ‘불평등’에 대한 분노다. 가정은 누진제 때문에 에어컨을 틀까 말까 고민해야 하는데, 왜 산업체와 상가는 우리와 달리 저렇게 펑펑 전기를 쓰고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심야에 공장을 돌릴 수 있는 대기업들은 밤 11시에서 오전 9시에 적용되는 경부하 요금(㎾h당 60원)으로 전기를 쓰는데, 중소기업은 심야 조업이 어려워 ㎾h당 100~180원의 요금을 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평등도 생기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전기요금 체제 전반을 손질해야 한다.

김선교 혹자는 산업용 전기요금은 송배전 비용이 적게 들어 싼 것이라고 말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애초 전력생산 설비가 과도하게 지어진 것 자체가 산업계를 위해서였다. 우리나라 전기품질의 기준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끊김없이, 주파수의 흔들림 없이 전력을 공급할 고급의 전력 인프라가 구축된 것은 산업체들을 위해서였다. 송배전 비용이 덜 든다고 전기를 싸게 써도 된다는 논리는 안 맞다.

산업용 경부하 요금을 싸게 책정한 것도 원전과 석탄발전은 수시로 껐다 켰다 할 수 없으니 밤에 생산되는 전기를 산업체가 갖다 쓰게끔 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심야에 ‘남는 전기’보다 더 많은 전력이 쓰이고 있다. 의도했던 것보다 더 많은 수요가 심야로 이동한 것이다.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를 조정해야 한다. 그래야 대기업들이 자체 발전설비를 확충하거나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을 구축하고 낮 시간 조업량을 늘리는 등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전력 사용에 나설 것이다.

■ 에너지전환 한다지만…효율적 소비 유도하는 ‘수요관리’는 실종

이유진 에너지전환 과제는 크게 두 축이다. 우선 에너지 효율화 등을 통해 수요를 관리하고, 필요한 에너지는 점차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상황을 보면 수요관리는 거의 실종 수준이다. 올 여름엔 개문냉방 상가를 단속하지도 않았고, 수요관리시장(매년 보조금을 받는 수요관리시장 참여기업들이 사전에 약속한 만큼 전력을 줄이는 제도)은 한번도 발동되지 않았다.

김선교 전력 수요관리는 어느 나라나 하는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하면 큰일 나는 것처럼 일부 언론이 호도하는 것은 잘못됐다. 올 여름 대기업들은 수요관리시장이 한 번도 발동되지 않은 덕에, 아무것도 안 하고 돈(수요관리시장 정산금-정부 요청이 있을 때 사전에 정한 만큼 절전을 하기로 약정하는 대신, 절전 실적과 무관하게 정부로부터 받는 정액 보조금. 지난해 기업들에 지급된 총 정산금 1844억원 가운데 기본정산금은 1829억원이었다)을 벌었다.

이도헌 농촌도 비효율적 에너지 사용이 심각한데 수요관리가 잘 안되고 있다. 당장 우리 돼지농장부터 에너지 다소비 농장이다. 가축분뇨에서 메탄가스도 많이 나온다. 쿨링(냉방) 등에 전기뿐 아니라 물도 많이 쓴다. 농촌은 기후변화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인 것이다. 그나마 우리 농장은 처음 지을 때부터 단열에 신경을 많이 써서 에너지 효율이 높고, 내년부터는 가축 분뇨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를 포집해서 재생에너지 발전을 할 계획이다. 정부가 각 농가가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에너지효율화 사례를 수집하고, 다른 농가에도 알려주는 등 독려에 나섰으면 한다.

또 하나, 저는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장치 마련을 전제로,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저도 타격을 입겠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기후변화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다. 산업 전반에 대한 전기요금 조정을 통해 기후변화의 고통과 책임을 분담하는 게 맞다. 현실적으로도 전기요금이 조정돼야 각계각층이 에너지효율을 추구하게 되고 에너지다소비 산업구조도 바뀔 것이다.

김성환 실제로 농업용 전기요금은 일반용의 40% 수준이다. 사서 쓰는 전기가 워낙 싸다보니 농어촌은 재생에너지 발전을 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인데도 유인이 없었다.

주택의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일도 서둘러야 한다. 단열 등으로 에너지사용을 효율화하고, 필요한 에너지는 태양광·지열 등으로 우선 자체 생산하는 에너지제로 주택 도입에 속도를 더 낼 필요가 있다. 국토교통부는 2025년부터 새 건물을 지을 때 제로에너지 의무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너무 늦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는 2005~6년 에너지제로주택 실험을 마친 뒤 2007년부터 곧장 새로 짓는 주택은 ‘패시브하우스’(단열공법을 써서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한 건물) 이상으로 지어야 한다는 조례를 만들었다. 우리도 앞으로 짓는 주택은 패시브로 짓게 하고, 태양광·지열 등 재생에너지 설비를 구축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정책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김소영 지난해 미국에서 청소년들이 ‘기후변화 대응을 제대로 하라’며 연방정부에 소송을 걸어 화제가 됐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들이 정부를 상대로 한 기후소송을 준비하고 있어 이를 돕고 있다. 얼마 전 만난 한 청소년이 ‘어른들은 왜 우리를 포기하는 건가요?’라고 하더라. 에너지를 더 많이, 싸게 쓰기 위해 자신들의 세대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고 묻더라.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조금 더 절박하게 실천했으면 한다. <>

정리/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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