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72) 엘지(LG)그룹 회장의 동생 구본준(66) 부회장이 그룹 내 역할을 확대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11일 경제단체들에 따르면, 이달 말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 동행할 방미 경제사절단에 구본준 부회장이 참가를 신청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현재 신청을 받고 있는데, 엘지에서는 구본무 회장 대신 구 부회장이 신청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9일에는 구 부회장이 엘지디스플레이의 업무 보고를 받았다. 엘지그룹 계열사들이 1년에 두 차례 그룹 최고경영진에 보고하는 전략보고회에서 구 부회장이 보고를 받은 건 처음이다. 보고 내용 중에는 수조원이 투입된 엘지디스플레이 파주 사업장의 신설 공장 P10에서 어떤 제품을 생산할지도 포함됐다. 또 분기마다 열리는 엘지 임원세미나에도 지난 3월까지는 구본무 회장이 참석했지만 지난달에는 구 부회장이 참석했다. 구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부족한 부분을 냉철하게 살피고 어떻게 이를 조속히 강화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방법을 고민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엘지그룹 관계자는 “하반기 업무계획 등은 물론이고 현안도 구 부회장이 다 보고받고 있다”며 최근 역할이 부쩍 늘어났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엘지그룹 관계자는 “구 회장은 최고경영자 인사와 그룹 포트폴리오(계열사 간 조정) 등 큰 틀을 챙기고, 구 부회장은 운영에 관한 것을 챙기는 것으로 지난해 인사 때 결정했다”고 말했다.
구 회장이 고령에다가 ‘70살 룰’을 언급한 점을 고려하면 구 부회장의 역할 확대는 의미가 있다. 70살 룰은 구자경(92) 명예회장이 70살에 그룹 회장직을 아들 구본무 회장에게 넘겨주고 용퇴하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상황을 아는 엘지 출신 관계자는 “구 명예회장이 원로들과 동반 퇴진하면서 세대교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구본무 회장도 그런 뜻을 밝힌 바 있지만 아들인 구광모 상무가 아직 젊어 지금은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 1월 LG인화원에서 열린 ‘글로벌 CEO 전략회의'에 참석한 구본준 ㈜LG 부회장(왼쪽).
구광모(39) 상무는 엘지그룹의 지주회사인 ㈜엘지에서 경영전략과 기획 업무를 맡고 있다. ㈜엘지 지분도 구본무 회장(11.28%), 구본준 부회장(7.72%)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6.24%를 갖고 있다. 하지만 젊은데다 검증 없는 경영권 승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구 상무가 경영 전면에 나서는 것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구 부회장의 역할 확대는 ‘장자승계’ 원칙은 지키면서 다음 세대 연착륙을 위한 ‘징검다리’를 놓는 방식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국내 재벌은 그동안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한차례 은퇴 뒤 복귀했다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이재용 부회장이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많다. 롯데그룹은 창업자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고령에도 경영권을 놓지 않으면서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회장 간 내홍에 휩싸였다. 한진그룹과 두산·금호그룹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형제간 다툼이 벌어졌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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