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서울대 경영대 교수)가 21일 출입기자단의 서면 인터뷰에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재벌정책 방향, 법집행 중점 분야, 전속고발권 폐지 등 주요 질문에 대해 원론적 수준의 짧은 답변만 하거나 인사청문회 때 설명하겠다고 넘어가는 등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기자단 일부에서는 무성의한 답변을 이유로 ‘보이콧론’이 제기됐을 정도다.
조 후보자는 재벌의 시장지배력, 경제력 집중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재벌의 불합리하고 불투명한 행태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며 짧게 답했다. 재벌정책에 대한 질문에는 “청문회에서 소상히 밝히겠다”고 아예 답변을 피했다. 쟁점인 공정위 전속고발권(공정거래 사건은 공정위가 고발해야 검찰 기소가 가능) 폐지에 대한 질문에는 “이미 정부 차원의 입장이 정리돼 국회에 제출된 것으로 안다. 앞으로 국회 차원에서 충실히 논의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성의없게 답했다, 카르텔(담합) 억제를 위한 검찰과의 공조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도 “협의가 필요한 부분은 긴밀히 협력하면서 여러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공정거래 관련 중점 법집행 분야에 대해서는 “공정위가 공정경제라는 시대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재벌개혁, 갑을관계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고 담합·독과점 남용 등 경쟁질서 저해행위에 대한 감시도 꾸준히 추진해 온 것으로 안다”며 마치 남의 일 얘기하듯 답했다. 이어 혁신생태계 조성과 관련해 “디지털경제 발전, 플랫폼 기업의 성장 등 새로운 경제흐름에 따라 시장의 경쟁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도 긴요하다. 혁신의 의욕을 저해하는 불공정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과 함께 경쟁과 혁신을 제고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도 검토하겠다”고 답했으나, 이는 전임 김상조 위원장(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발표했던 2019년 새해 업무계획의 재탕이다.
조 후보자는 지난 9일 임명 당일 어떤 정책에 방점을 찍을 생각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청문회를 통과하고 공정위원장이 된 후에 말하겠다. 지금은 내정자 입장이라 뭐라고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한발 뺐다. 조 후보자의 소극적 태도는 전임자의 적극적인 모습과 대조된다. 김상조 전 위원장은 2017년 후보지명 다음날 바로 기자간담회를 자청해서 갑질근절 최우선 과제 추진과 재벌개혁을 위한 기업집단국 신설 등 핵심 정책구상을 소상히 밝혔고, 이는 2년의 재임 동안 그대로 시행됐다.
조 후보자가 이런 모습에 대한 해석은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청문회를 앞두고 개인적인 의견을 자세히 밝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후보자의 신중한 태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후보자 지명 당시부터 제기됐던 전문성 문제를 지적한다. 청와대는 인사배경으로 “기업지배구조, 기업 재무분야 전문가”라고 강조했지만, 공정위 안팎에서는 선듯 수긍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실제 조 후보자는 공정거래 분야에서는 2003년 기업지배구조 관련 논문과 2012년 재벌 관련 기고글 외에는 특별히 내세울 게 없다. 오히려 금융정보학회 회장, 금융학회 부회장, 증권선물위원회 비상임위원을 맡는 등 금융전문가로 활동했다. 공정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공정위 청문회 보좌팀에서도 굳이 현시점에서 인터뷰에 자세히 답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 것으로 안다”면서 “후보자의 공정거래 업무에 대한 준비가 전임자와 차이가 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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