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서초동 삼성본사사옥.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재용 부회장이 뿔났다?”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 2월28일 전격 해체된 이후 삼성의 예사롭지 않은 행보가 계속 이어지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13일 전직 미전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전직 팀장들(사장 또는 부사장급) 7명에게는 상담역·보좌역 자리가 일절 주어지지 않았다. 삼성은 임원 출신 퇴직자에게는 사장급의 경우 상담역, 부사장급 이하의 경우 보좌역이라는 이름으로 2~3년간 기본급의 일부를 지원해왔다. 박영수 특검이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한 최지성 실장과 장충기 실차장을 제외한 나머지 미전실 팀장들은 일정 시점 뒤 선별 구제되지 않겠느냐는 예상도 싹 사라졌다. 미전실 전직 팀장들은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삼성을 완전히 그만뒀다. 말 그대로 백수가 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팀장은 자체 송별회 때 직원들의 위로에 눈물까지 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미전실 해체와 팀장급 전원 사임도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미전실 해체는 지난해 12월6일 국회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이 부회장이 약속한 것이지만, 특검 해체일에 바로 단행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룹 경영에 꼭 필요한 미전실 기능 중 일부를 삼성전자·물산·생명 등 3대 계열사로 이전시켜 충격을 최소화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버렸다. 그룹 안팎에서는 “발표 직전 주말에 이 부회장을 면회한 고위임원을 통해 ‘시간을 안끄는게 좋겠다’는 뜻이 전달됐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미전실 팀장 사임도 발표 당일 오전까지는 미전실 안에서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다. 미전실의 전 임원은 “실장과 실차장을 제외한 나머지 팀장들은 원소속 계열사로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면서 “당일 낮에 상황이 급변했다”고 말했다.
삼성 안에서는 이같은 미전실 전격 해체, 팀장 전원 사임과 전직 임원 예우 배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이재용의 분노’가 꼽힌다. 미전실의 한 전직 팀장은 “우리는 폐족이다. 다 죽어야 한다”고 문책 분위기를 전했다. 대관조직 해체 발표도 이 부회장의 심기를 반영해준다. 다른 그룹의 경우 2016년 9월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설립 의혹이 본격 제기되기 이전에 비선실세 최순실의 존재를 제대로 아는 곳이 거의 없었다. 반면 삼성은 막강한 정보력을 통해 최씨의 존재를 진작에 파악했고, 이를 활용해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으려하다가 화를 자초한 꼴이 됐다. 오랫동안 삼성 정보수집과 대관업무를 총괄해온 장충기 미전실 실차장이 이번 사태의 1차 책임자로 꼽히는 이유다. 특검 안에서는 장 실차장에게 압수한 휴대폰에서 과거 수년치의 전화통화·문자·카톡 내용이 그대로 나왔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미전실의 다른 고위 임원들은 보안상 6개월마다 휴대폰을 교체하는데, 정작 보안책임자인 장 사장이 이를 지키지 않아 결정적 증거를 남겼다는 얘기다.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과 동생인 홍라영 총괄부관장의 동반사퇴도 주목거리다. 홍 관장이 지난 6일 사임을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아들인 이 부회장이 구속된 상황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는 본인 뜻이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틀 뒤 홍 총괄부관장마저 전격 사퇴하자, 이재용 부회장의 뜻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확산됐다. 삼성 안에서는 지난해 10월 이후 <제이티비시(JTBC)>가 삼성-최순실씨 간의 특혜거래를 계속 보도할 때부터 이 부회장이 홍석현 제이티비씨 회장 등 외가에 대해 크게 서운해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공백이 길어질 가능성에 대비해 외가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사전단속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의 전직 고위임원은 “이 부회장으로서는 ’내가 감옥에 들어갈 때까지 (미전실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도 “하지만 일처리가 너무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노형석 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