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S, 한국정부 배상 판결 후폭풍
엘리엇, 2016년 3월 소송 취하하면서 비밀합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 중재 판정서 첫 공개
엘리엇, 2016년 3월 소송 취하하면서 비밀합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 중재 판정서 첫 공개
삼성물산과 엘리엇. 연합뉴스
2015년 삼성물산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을 ‘대머리 독수리’로 형상화해 비판했다. <한겨레> 자료
5만7천원에 주식매수 청구한 다른 주주와 형평성 논란
합의 내용·지급 사실 미공개는 공시 위반 소지 대법원 결정 뒤인 2022년 5월18일 엘리엇은 “최근 삼성물산으로부터 원천징수세와 기타 세금을 공제한 659억263만4943원의 추가 지급금을 수령했다”는 내용을 중재판정부에 알렸다. 삼성물산이 제시한 주식매수가격(5만7234원)과 대법원이 결정한 가격(6만6602원)의 차액(9368원)에 자신들이 보유했던 주식 수(773만2779주)만큼의 돈을 추가로 받았다는 얘기다. 엘리엇은 이어 “이 돈은 2022년 5월12일에 지급됐고, 현재 대한민국 씨티은행 계좌에 있으며, 각종 세금 및 규제 관련 확인이 완료되는 대로 송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엘리엇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중재판정 초기엔 이 돈이 “삼성과의 일”이라며 자신들이 주장하는 손해액과는 별개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태도를 바꿔 최종 손해액에선 이를 제외했다. 엘리엇과 삼성의 갈등은 2015년 5월26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을 발표하고 합병 비율을 ‘1 대 0.35’로 정하면서 비롯됐다. 삼성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주가를 기준으로 산정했다지만, 삼성물산 주가를 지나치게 저평가했다며 주주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엘리엇도 같은 주장을 하면서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 금지’ 등 소송을 제기하면서 합병 반대에 나섰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요 주주들이 찬성하면서 합병안은 가까스로 가결됐다. 이에 엘리엇은 법원에 주식매수청구가격 조정을 신청해 1심에서 패소하자 항소했지만 얼마 뒤 돌연 소송을 취하했다. 당시 이를 두고 엘리엇의 ‘백기 투항’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엘리엇이 별도 비밀합의를 통해 법원이 상향 평가한 주가만큼 삼성물산에서 추가 지급금을 받은 사실이 공개되면서, 당시 삼성물산이 제시한 가격으로 주식을 팔았던 일반 주주와의 형평성 시비가 일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이 2015년 8월 공시한 내용을 보면, 약 1172만주를 주당 5만7234원에 사들였다. 결국 엘리엇 지분(773만주)을 뺀 나머지 400만주를 보유했던 다른 주주들은 제값을 받지 못한 셈이 된다. 손창완 연세대 교수(법학)는 “삼성물산이 제시한 가격으로 주식매수를 청구한 주주들은 억울할 수 있지만 상법상 회사는 주식매수가격을 개별 주주와 협의에 의해 결정할 수 있다. 엘리엇처럼 개별 주주가 비밀합의로 추가 보상을 받는 걸 방지하려면 상법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의 공시 의무 위반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물산과 엘리엇의 합의는 공정한 거래나 투자자 보호와 관련해 중요한 정보임에도 이를 알리지 않았고, 심지어 합의 이행에 따른 추가 지급도 공시하지 않았다. 국내 대형 로펌의 대표 변호사는 “상당한 금액을 엘리엇에 지출한 만큼 공시의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삼성물산이 엘리엇에 724억원을 지급하고도 이를 공시하지 않은 것은 공시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이에 대해 즉각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비밀합의 내용은 당사자 간의 일이라 확인이 어려운데 현재 파악한 내용만으로는 주요사항 보고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삼성과 엘리엇이 맺은 비밀합의 내용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보도자료 등을 통해 밝힌 내용 외에 추가 사실 확인은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도 비밀합의 내용이나 공시 위반 가능성 등에 대한 <한겨레> 질의에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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