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16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한국 정부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중재 2일 차 심리에서 한국 정부 쪽 대리인을 맡은 로펌 ‘프레시필즈 브룩하우스 데린저’의 변호인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에서 한국 정부가 약 1300억원을 지급하게 된 것과 관련해, 법무부는 “엘리엇 청구금액 7억7천만달러(약 9917억원) 중 배상원금 기준 약 7% 인용, 정부 약 93% 승소”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엘리엇의 청구액 변경이나 엘리엇보다 8배나 더 물게 된 법률비용 등이 반영되지 않아 ‘수상한 셈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엘리엇에 줄 배상원금은 5359만달러(690억원)다. 2015년 7월16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가결 전날부터 2023년 6월20일 중재판정일까지 5% 연 복리 이자도 지급해야 해 지연이자만 300억원을 웃돈다. 여기에 투자자-국가 분쟁에 들어간 법률비용 부담이 추가된다. 중재판정부는 법률비용으로 엘리엇이 정부에게 346만 달러(44억5천만원), 정부가 엘리엇에게 2890만 달러(372억5천만원)를 각각 지급하라고 명했다.
정부는 엘리엇의 최초 청구금액을 기준으로 원금은 ‘단 7%’만 인정됐다며 안도하는 기색이지만 법조계에서는 정부가 승소비율을 과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엘리엇이 분쟁 도중에 청구액을 4억825만달러(5258억원)로 수정했는데, 정부가 이를 감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제통상 전문인 송기호 변호사는 “굳이 승소비율을 따진다면 최종 청구액(원금)을 기준으로 하는 게 맞다”며 “정부는 최초 청구액을 기준으로 삼아 승소비율을 부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엘리엇의 최종 청구액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인용비율은 13.1%다.
더군다나 법무부는 ‘배보다 큰 배꼽’인 300억원대 법률비용에 대해선 함구한다. 한국 정부가 ‘93% 승소’했음에도 엘리엇보다 8.5배나 많은 법률비용을 부담하는 이유를 묻자 법무부 관계자는 “법률비용의 상세 내역과 인용 비율은 정부와 엘리엇 사이에 아직 공개 여부 합의가 안 된 사안”이라며 답을 피했다. 한국의 민사소송에서는 93% 승소했다면 법률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전문가들은 손해액 산정 시뮬레이션에 쓴 엘리엣의 법률비용 상당 부분을 한국 정부가 부담하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법률비용 자체가 투자자-국가 분쟁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 노주희 변호사는 “아이에스디에스 자체가 국제투기자본과 그들의 변호사들 배만 불려주는 구조라는 사실이 엘리엇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며 “엘리엇은 피해액을 과장해서 제소한 뒤 그중 일부라도 거둬가고, 정부는 청구액과 인용액의 차이를 과장해 성과를 홍보하는 이상한 형태”라고 비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