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대우조선해양 서울사무소 모습. 연합뉴스.
“우리 회사가 이명박 정부 시절에 굉장히 많이 시달렸다. 정치권 인사들이 고문, 감사, 자문위원 등 낙하산으로 많이 내려왔다. 이제 그런 시절은 끝났나 했는데….”
대우조선해양 박두선 신임 사장 선임을 둘러싼 청와대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갈등과 관련해, 한 통신사 고위 임원 출신이 익명을 전제로 한 말이다. 언론에서는 이 사안을 신·구 권력 간의 갈등이라는 관점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그의 시각은 달랐다. 새 정부 인사들이 대우조선해양을 대선 캠프 출신들의 논공행상 먹잇감으로 꼽아왔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선 캠프에서 ‘주군’(대선 후보)의 당선을 바라며 일해온 인사들이 모두 ‘궁궐’(비서진)로 따라갈 수는 없다. 그래서 새 정부 출범 때마다 국가·정부기관은 물론이고 인·허가와 은행 채권단 관리 등으로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민간기업들까지 ‘먹잇감’으로 노리는 행태가 벌어진다. 과거 비슷한 경험을 한 기업 출신들의 말을 들어보면, 캠프 출신이거나 자신들의 요구를 잘 들어줄만 한 인사를 수장으로 앉힌 뒤 본사와 자회사들의 고문·감사·자문위원 등 적당한 사회적 지위와 연봉이 보장되는 자리들을 달라고 요구한다고 한다.
이들의 목표물로 꼽혀 ‘낙하산 인사’ 수난을 당해온 대표적인 민간기업이 ‘국민기업’을 표방해온 포스코·케이티(KT) 등이다. 이들 기업에선 그동안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최고경영자가 임기를 남긴 상태에서 물러나고 후임이 낙하산 인사로 채워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버티다가 검찰 수사를 받으며 밀려나는 경우도 있었다. 한 경험자는 <한겨레>와 만나 “나중에 되짚어보니, 새 정부 실세 소리를 듣는 캠프 출신 인사가 만나자고 해 덕담을 건넬 때 ‘캠프에서 고생하신 분들 많을텐데 명단 주시면 몇 분 챙겨보겠습니다’라고 화답했으면 고생도 안하고 살아남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논란이 된 대우조선해양에도 정권과 가까운 인사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사실은 2015년 산업은행 국정감사에서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2004년∼2015년까지 임명된 대우조선해양과 자회사 자문·고문 등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출신은 물론이고 방위사업청과 국정원 출신 등도 포진해 있었다. 2008년 이후 임명된 사외이사 18명 중 10명도 친정권 인사로 지적됐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조전혁 전 의원 등이 대표적으로 꼽혔다.
이런 낙하산 인사가 대우조선해양 부실 원인 중 하나로 꼽히면서 2017년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경영정상화관리위원회’가 출범했다. 이후 경영정상화관리위가 정치권의 외풍을 차단하고 독립적인 판단을 해왔다는 게 내부 평가다. 하지만 이번 논란으로 그동안 어렵게 지켜온 원칙이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석열 당선자는 3월21일 경제 6단체장을 만나 “나는 간섭하지 않는다. 간섭 안하는 게 도와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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