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알아야 할 디지털
추석 귀성길 고속열차에 몸을 실었다. 늘 그렇듯, 열차 칸 통로에는 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빼곡히 섰고 간이용 접이의자를 펼치고 앉은 요령있는 사람도 있었다. 좌석 칸과 통로에 공통된 풍경이 두드러졌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장소 구분 없이 지나치게 스마트폰에 빠져 있다고 걱정한다. 하지만 귀성열차 안 디지털 풍경에는 어른, 아이가 특별히 구별될 만한 점은 없어 보였다.
특이한 점이라면 입추의 여지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찬 열차 안이 의외로 소란하지 않고 심지어 조용한 느낌마저 들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어폰으로 연결된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하거나 소리 없이 메신저로 대화하고 있었다. 동반석에 앉은 한 가족도 잠시 대화를 나누는 듯하더니, 엄마와 아빠는 잠이 들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자매는 이어폰을 각자 끼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게임에 심취한 두 아이는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한 시간가량 서로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디지털 기기를 손에 든 채 각자의 세계에 빠져든 사람들 사이의 이 고요함, 이를테면 디지털 침묵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이런 디지털 풍경을 중독이나 관계 단절로 보는 건 지나친 단순화다. 오히려 여기에는 나름의 문화적 적응과 상호작용의 규칙이 작동하고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공공장소에서의 행위>에서 현대의 다양한 공공장소에서 이뤄지는 사람들의 익명화된 만남이 시민적 무관심에 의해 지속되며, 현대인의 겉으로 표현된 무관심은 냉담함이 아니라 숱한 이방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공손한 거리 둠이라고 말한다.
종착지에 내릴 때까지 열차 안은 사람들의 움직임을 극도로 제한하고 타인이라는 이방인과의 마주침도 피할 수 없는 공간이 된다. 열차라는 이동 없는 이동의 공공장소에서의 디지털 침묵은 자기 세계로의 몰입이면서 타자를 위한 소리 없는 배려로 작용한다.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 두 아이는 부모에게 스마트폰과 함께 침묵을 반납하고 재잘거리며 내릴 채비를 했다. 가족과의 사적 공간에서는 디지털 침묵보다는 즐거운 소통이 더 많았길 기대해본다.
윤명희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선임연구원 hludens@hani.co.kr
윤명희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선임연구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