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희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선임연구원
부모가 알아야 할 디지털
사람들은 본격적인 일을 하기 전이나 이동하는 틈새 시간에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 다양한 사이트를 할일없이 어슬렁거리고 우연히 관심거리를 발견하곤 한다. 인터넷 사용자의 이런 모습은 목적없이 배회하며 구경하는 산책자에 가깝다. 그런데 이런 디지털산책자의 빈둥거리는 시간은 단지 쓸모없는 것일까.
사람 뇌는 목적 없이 헤매고 게으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야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 브리짓 슐트는 <타임푸어>에서 시간스트레스가 뇌를 망가뜨린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간 압박은 뇌의 회백질 양을 줄이는데, 이는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손상시킨다. 디지털화는 시간 사용의 효율성을 지향하며 게으름 부릴 시간을 앗아가지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헤매며 긴장을 풀고 즐거움을 느낄 틈도 제공하는 양면성을 지닌다.
곧 여름방학이지만, 아이들은 게으를 시간이 없다. 아이의 학습능력을 높이려고 고심하는 많은 부모들은 디지털 기기를 효율적인 학습 도구로 쥐여주는 것에는 거리낌이 없으면서도 게으를 시간을 찾는 매개 도구로 활용하는 데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많은 가정에서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학습을 위한 도구이거나 방해물이라는 극단을 오갈 뿐이다. 하지만 디지털기기는 학습과 놀이의 도구로 동시에 사용될 수 있다.
놀이와 자유시간은 저절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게을러지고, 제대로 놀기 위해서는 이를 찾고 경험하고 익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친구들과 수다떨기, 만화 보기, 음악 듣기, 그리기 같은 부모 세대가 보낸 자유시간은 카카오톡, 웹툰, 유튜브, 디지털드로잉 즐기기로 변형되고 있다. 이런 전환이 어린 디지털 산책자의 쉼과 여유가 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놀이와 여가 체험을 아이와 함께 가져보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유튜브의 디지털드로잉 영상을 함께 보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피시를 통해 휴가지 풍경을 함께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기기를 잠시 꺼두는 것도 게으를 시간을 위한 한 방편임은 물론이다.
윤명희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선임연구원 hlude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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