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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목수는 보이지 않는 곳도 싸구려 쓰지 않는다”

등록 2011-10-24 20:11수정 2011-10-24 22:53

잡스 전기 전세계 동시 발매
병상서도 “산소마스크 디자인 마음에 안든다”
“조작 가장 단순한 TV만들 방법 찾아내” 언급
아이폰에 ‘인텔 칩’ 쓰려다 삼성 칩으로 교체
“아름다운 서랍장을 만드는 목수는 뒤쪽이 벽을 향해 아무도 보지 못한다고 해서 싸구려 합판을 쓰지 않아요. 목수 자신은 알기 때문에 뒤쪽에도 아름다운 나무를 써야 하지요. 잠을 제대로 자려면 아름다움과 품위를 끝까지 추구해야 합니다.” 지난 5일 숨진 애플의 공동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를 내놓고 강조한 내용은 사실 그의 아버지 폴 잡스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시사주간지 <타임> 편집장을 지낸 월터 아이작슨이 40여차례 잡스를 인터뷰하고 펴낸 <스티브 잡스>가 24일 전세계에서 동시 발매에 들어갔다. 전세계 소비자와 산업계가 잡스가 만든 제품과 자기장에서 움직였지만, 스스로는 베일에 감추던 내밀한 모습의 봉인이 풀렸다.

잡스는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쓰면서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을 철칙으로 여기셨지요”라며 아버지가 장롱이나 울타리를 만들던 태도에서 배웠음을 밝혔다. 완벽과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아무도 보지 않는 인쇄회로기판의 컬러와 디자인을 비롯해 매킨토시 포장만 50번을 뜯어고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말년의 병상에선 의사가 산소마스크를 씌우자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며 벗겨내고 5가지 마스크를 가져오면 자신이 고르겠다고 할 정도였다.

잡스는 부모를 양부모로 부르는 것에도 날카롭게 반응했다. 그는 양부모를 “1000% 내 부모”라며 애정을 표했고, 생부모에 대해서는 “나의 정자·난자은행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작슨은 잡스가 젊은 시절 “입양되었다는 것과 친부모를 모른다는 사실에 고통받았으며, 이를 극복하려 몸부림쳤다”는 주변의 증언을 실었다.

스티브 잡스가 1991년 아내 로린 파월과 찍은 사진.
스티브 잡스가 1991년 아내 로린 파월과 찍은 사진.
잡스의 부모는 잡스를 위해 헌신적이었고, 비범한 재능의 아들을 특별하게 대우하려 애썼다. 잡스가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말썽을 부리자 아버지 폴은 “바보 같은 내용만 외우게 만드는 학교가 문제”라고 말할 뿐, 아들을 탓한 적이 없다. 잡스가 중학교 때 따돌림으로 전학을 요구하자, 형편이 어려웠지만 푼돈까지 끌어모아 좋은 학군으로 이사를 했다. 잡스는 초등 4학년 때 그의 탐구욕을 북돋워준 교사 이모진 힐에 대해 “그분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소년원이나 들락거리고 말았을 것”이라며 ‘내 인생의 성자 중 한 분’으로 표현했다.

그는 스스로를 경쟁에서 승리나 돈을 추구하지 않는 예술가로 생각했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시켜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애플의 통제를 폐쇄가 아닌 통합적 접근법이라고 보았다.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 싶고 사용자들을 배려해서, 쓰레기 제품을 내놓기보다는 사용자 경험 전반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그가 다녔던 게임회사 아타리에서는 설명서 없이 동전을 넣고 게임을 곧바로 실행할 수 있는, 직관적인 단순함을 배웠다.

스무살 무렵 7개월간 인도를 여행하고 온 잡스는 “서구의 광기와 이성적 사고가 지닌 한계를 목격했다”며 선불교에 빠졌다. 컴퓨터에서 팬을 없앤 이유도, 소음이 선불교의 명상을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56년 아버지 폴 잡스에게 안겨 있는 두살 때의 스티브 잡스. 민음사 제공
1956년 아버지 폴 잡스에게 안겨 있는 두살 때의 스티브 잡스. 민음사 제공
기벽도 곳곳에 나타난다. 채식주의자로 당근이나 사과만 먹으면서 몇주를 버티기도 하고 “단식에 들어가 1주일이 지나면 황홀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젊은 시절 경험한 환각제(LSD, 마리화나)에 대해서도 “사물에 이면이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과속으로 딱지를 뗀 뒤 “또 걸리면 그땐 감옥”이란 경고를 듣고도 곧장 과속을 하는가 하면, 자신의 승용차는 번호판 없이 다니고 회사에선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를 했다. 자신의 딸을 부인하다가 유전자 검사를 받고 회사 이미지를 우려한 끝에 태도를 바꾼 모습도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그는 2007년 아이폰 출시 뒤엔 외부 개발자들이 아이폰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앱스토어를 허용하지 않으려 했다. 내부 비판자들의 주장을 수용한 덕분에 앱스토어 생태계가 비로소 열렸다. 그는 아이폰에 처음엔 인텔 칩을 사용하려 했으나, 개발자들의 반대의견을 받아들였고 이는 자체 설계를 통해 삼성전자에 제조를 맡기는 결정으로 이어졌다. 그는 “인텔은 느리고, 다 배우고 나면 경쟁자들에게 팔아먹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잡스는 애플이 뛰어들 새 분야도 언급했다. 그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조작법(UI)을 갖춘 텔레비전을 구현할 방법을 찾아냈다”며 단순하고 우아한 애플 티브이를 예고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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