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케이티(KT) 대표이사가 차기 대표 경선 절차에서 중도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합뉴스
‘셀프 연임’ 논란에 휩싸였던 구현모 케이티(KT) 대표가 결국 연임을 포기했다. 국회의원에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상황이라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반대하는데다 ‘깜깜이 경선’ 등의 논란이 일며 차기 대표이사 후보 선정 절차가 두차례나 엎어진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중도 하차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력 후보로 꼽히던 구 대표가 빠지면서 케이티 차기 대표이사 후보 경선 절차가 새삼 주목받게 됐다. 케이티 안팎에선 벌써부터 실세 정치권을 등에 업은 ‘낙하산 인사’ 재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케이티는 “구현모 대표가 이사회에 차기 대표이사 후보군에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이사회가 수용했다”고 23일 밝혔다. 케이티 이사회는 차기 대표이사 사내 후보자군에서 구 대표를 제외한 뒤 경선 절차를 이어갈 방침이다. 구 대표는 오는 3월 정기주총를 끝으로 케이티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난다. 케이티는 “주총까지는 대표이사 직무를 수행한다. 대표 자격으로 27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막하는 엠더블유시 2023에도 참석한다”고 설명했다.
구 대표의 연임 포기는 지난해 12월 연임 적격 심사를 받아 최종 후보로 확정됐다가 엎어질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 당시 케이티 이사회는 구 대표의 연임에 ‘적격’ 결론을 내고도 여론을 의식해 추가 경선 절차를 거치겠다고 해 ‘
셀프 연임’을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경선 방식·일정은 물론 누가 지원했는지조차도 공개하지 않고 깜깜이로 진행한 경선에서 구 대표가 또다시 최종 후보로 대표로 결정되자, 국민연금이 직접 나서서 선임 과정의 불투명성을 문제삼기도 했다. 결국 케이티 이사회가 이달 9일 구 대표를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확정한 것을 백지화하고 공개경쟁 방식으로 원점에서 다시 선임하겠다고 밝히면서 대표이사 후보 선임 절차가 3번이나 진행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차기 대표이사 선임 절차가 장기화하면서 회사 안팎에선 경영계획 수립 등 사업 진행에 차질이 생기고,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공개경쟁 방식으로 다시 뽑았는데 또 구 대표로 결정되면 국민연금은 수탁자 책임 가이드라인 조항에 따라 또 반대할 수밖에 없는데 어찌하냐는 하소연도 나왔다. 익명을 요청한 케이티 관계자는 “구 대표가 연임하더라도 국민연금이 반대하면 국내외 사업 추진이 쉽지 않다고 판단해 (후보 사퇴를) 결정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구 대표의 불참으로 케이티 대표이사 선임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 공모에 정치권 인사들까지 대거 지원하면서 ‘낙하산 인사’ 재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케이티 차기 대표이사 후보 공개 모집에는 권은희 전 국민의힘 의원, 통상교섭본부장 출신의 김종훈 전 새누리당 의원, 윤석열 캠프 특보로도 활동한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의원,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윤진식 전 새누리당 의원 등 여권 인사들이 여럿 지원한 상태다. 케이티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인사 대표와 임원들 때문에 회사 경영이 뒷걸음질치는 상황이 반복됐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케이티 이사회 내 기업지배구조위는 외부 전문가들로 ‘인선자문단’을 구성해 사외·사내 지원자가 제출한 서류심사를 진행 중이다. 심사 대상은 공모에 지원한
사외 인사 18명과 본사 및 주요 그룹사에서 일정 기간 근무한 부사장급 이상 임원 16명 등 34명이다. 인선자문단은 이달 28일까지 이들 후보 중 열명 안팎을 면접 대상자로 추려 대표후보추천위에 올릴 예정이다. 이후 대표후보심사위가 면접·프리젠테이션 심사를 통해 후보를 좁혀가는 방식으로 2~3명을 골라 이사회에 보고하고, 이사회가 최종 후보를 확정해 정기주총 안건으로 올린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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