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적 분식회계 혐의를 받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천시 연수구 사무실로 직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가 합작사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에 대한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지분을 살 권리)을 행사할 경우 추후에 지분을 되사와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고의 분식회계’ 의혹에 대해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로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할 수 있어 회계처리 기준을 바꿨다던 삼성바이오의 기존 해명과 엇갈리는 대목이다. 삼성바이오는 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꾸는 회계 변경으로 기업가치를 4조8086억원 늘리는 효과를 봤다.
8일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삼성이) 2015년 에피스 상장을 진행하면서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게 되면 일부 지분을 되사는 방향으로 협의를 진행했다”며 “그럼에도 콜옵션 행사만을 이유로 지배력 상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삼성이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외부에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에피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 추진 과정에 간접적으로 관여한 바 있는 그는 또 “에피스가 애초 2015년 말부터 상장을 추진하기로 계획을 잡고 있었는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지시로 갑자기 앞당겨 바이오사업 설명회를 개최하고 상장 발표를 했다”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결의가 표 대결로 갈 것 같으니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일정을 무리하게 앞당겼다”고 덧붙였다.
그의 주장은 이번에 공개된 삼성바이오 내부문건을 통해 뒷받침된다. 삼성바이오 재경팀은 2015년 11월18일 작성한 보고서에 “(콜옵션 관련 조항을 수정하자고 하면) 현재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와 일부 지분 매입 및 에피스의 후속제품 마케팅 협력 계약 등에 대한 협상력 약화 우려가 있다”고 적었다.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면 에피스 지분(50%-1주)을 확보할 수 있는데, 이 가운데 일부를 매입하는 협상이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또 재경팀은 2015년 11월10일 “현재 협상 진행중인 바이오젠사와 콜옵션 행사 및 지분 매도, 후속제품 마케팅 협력 계약 외 추가 이슈로 바이오젠사의 동의 여부 불투명”이라고 보고했다. 이 역시 콜옵션 행사 뒤 지분을 되사는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삼성은 콜옵션 행사와 지분을 되사오는 것을 ‘세트’로 묶어서, 경영권을 다시 확보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삼성은 최근까지도 바이오젠과 지분 매입 협상을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 관계자는 “(모회사) 삼성물산이 한화종합화학 지분 매각을 추진한 것도 에피스 지분을 매입할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였다”며 “올해 초까지 협상이 진행되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여부를 가리기 위해) 금융위원회의 감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자 중단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6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부문건을 폭로하는 등 ‘분식회계 의혹’ 보도가 잇따르자 이날 삼성바이오 주가는 3.88% 하락한 38만45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날 코스피는 0.67% 올랐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오는 14일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감리를 재심의하는 2차 회의를 연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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