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금융위원장이 7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성사를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가치가 부풀려졌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가운데(<한겨레> 11월7일치 1면), 삼성그룹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의 통합 과정이 고의 분식회계의 ‘몸통’으로 지목됐다. 금융당국도 삼성물산에 대한 감리 필요성을 밝히고 나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논란이 합병의 정당성 등 그룹 지배구조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가 모회사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과 관련이 있음이 내부문건을 통해 드러난 만큼 삼성물산에 대한 감리에 착수해야 한다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대해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최종구 위원장은 “감리 여부는 금융감독원과 증권선물위원회가 판단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날 박 의원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을 재심의 중인 증권선물위원회에 보고된 회사 내부문건을 공개했다. 추가로 공개된 이 문건에서도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혐의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5년 8월12일 삼성바이오 재경팀이 작성한 이 문건을 보면 “(바이오젠 콜)옵션 효과 반영에 따른 주식가치 하락 효과를 할인율 조정으로 상쇄하여 3.3조원으로 평가 산정 예정”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에 따라 14.5%인 할인율을 삼성바이오는 8.9%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11.4%로 수정하겠다고 했다. 이는 현재 가치의 변화 없이 할인율을 임의로 바꾸는 ‘고의적인 분식회계’를 통해, 합병 과정에서 높이 평가받은 바 있는 삼성바이오 가치를 지키려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할인율은 미래 시점의 일정 금액과 동일한 가치를 갖는 현재 시점의 금액(현재 가치)을 계산하려고 적용하는 비율로, 투자가치 평가 등에 널리 활용된다.
실제 이 문건에 나온 ‘바이오 주식가치 평가에 따른 영향’ 부분은 할인율 변경의 이유를 보여준다. 삼성바이오 가치가 저평가될 경우, 합병비율 이슈가 불거지는 게 ‘단점’이라고 삼성 쪽은 분석했다. 합병비율 이슈가 부각되면 삼성물산 주가가 하락하는 문제가 생기고, 합병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사후 대응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동안 참여연대·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와 옛 삼성물산 주가조작 의혹 등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해왔다.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부풀려 모회사인 제일모직과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총수 일가가 유리한 합병비율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는 주장이다. 이런 의혹 제기에 금융감독원은 2017년 삼성바이오에 대한 특별감리에 들어갔고, 지난 5월 고의 분식회계라는 결론을 내렸다. 증권선물위원회에 상정된 금감원의 감리 결과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의 연계 고리는 건드리지 않고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 문제에만 국한됐다.
하지만 내부문건 공개로 인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은 삼성그룹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의 분식회계 의혹으로 이어지며 그룹 지배구조로까지 논란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박용진 의원은 “(분식회계의) 실질적인 과정에 삼성물산도 참여했고 그룹 미래전략실까지 공모한 상황에서 삼성물산까지 분식회계 정황이 있다. 이 부분을 증선위나 금감원이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박 의원이 제기한 의혹도 (증선위에서) 상당히 깊게 논의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증선위가 결론을 내리는 데 있어) 현재까지 일부러 시간을 끌거나 그런 것은 없다. 최대한 공정한 결론이 내려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어 “이미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와 관련한 고발과 물산-모직 합병비율 조작 의혹에 대한 고발도 이뤄진 상황이기 때문에, 삼성그룹 차원에서 진행될 수 있는 증거인멸을 막기 위해 금감원과 검찰의 적극적인 감리 및 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완 송경화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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