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conomy | 홍춘욱의 시장을 보는 눈
강남 아파트를 상징하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와 청담동 아파트.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
“작은 상가나 한 채 사려고 해.”
금융권 구조조정 바람이 휘몰아친 지난겨울, 모처럼 저녁을 함께한 대학 선배 A가 대뜸 상가 얘기를 꺼냈다. 그는 증권사의 PB센터장으로 명예퇴직하면서 억대의 퇴직금과 위로금을 받았는데, 그 돈과 저축한 돈을 합쳐 상가를 사기 위해 요즘 다리품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주식과 펀드 투자에서 나름대로 탄탄한 입지를 쌓았던 A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 것은 의외였다. 내로라하는 금융전문가인 만큼 노후 자산을 대부분 금융상품으로 구성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A는 “쌈짓돈이라면 모를까 목돈 대부분을 변동성이 큰 금융자산에 투자하기에는 솔직히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식사가 끝난 이후에도 선배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심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심리적인 요소를 빠트리고선 제대로 된 노후 자산 재설계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부동산은 일반적으로 금융자산보다는 수익도 낮고 효율적이지 못하지만 마음은 편할 수 있다. 주가의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되고, 실물자산이니 태풍이 불어와도 허공으로 사라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수시로 흔들리는 사람에게 비환금성 자산인 부동산은 재산을 지키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 부동산이 이처럼 나름대로 효용이 있으니 선배의 선택은 어찌 보면 현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원갑(2017년, 한경BP), “박원갑의 부동산 투자원칙”4∼5페이지>
작가 이외수 선생이 글을 쓸 때 집에 철창 감옥을 설치하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가둔 일화는 유명하다. 철창 감옥이니 당연히 자물쇠는 밖에 있을 것이다. 안에서는 문을 열 수 없다. 그는 아내에게 원고가 마무리될 때까지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는 “언제 술 먹고 싶어 바깥으로 뛰쳐나갈지 모르니까 밖에서 자물쇠를 채우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5년간 스스로의 감옥 생활 끝에 나온 소설이 베스트셀러《벽오금학도》다.
철창 감옥은 나약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가두는‘자기구속장치’다. 자신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미리 제어하는 것이다. 가령 알코올 중독 증상인 사람은 집 안 냉장고에 있는 술을 아예 치워버리거나 금연을 위해 재떨이를 없애버리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 될 것이다. 조금만 불편하고 귀찮게 해도 유혹에 빠질 확률이 크게 줄어든다. (중략)
자산관리의 3대 원칙으로 흔히 안전성, 수익성, 유동성(환금성)을 꼽는다. 이 가운데 유동성은 내가 팔고 싶을 때 팔 수 있어야 가치를 지닌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언제든지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예금과 적금 같은 금융자산을 선호하는 이유다. 부동산의 가장 큰 약점은 비환금성이다. 하지만 진득하지 못하고 촐랑대는 사람에게는 부동산이 오히려 자산관리에 득이 될 수 있다. 이른바 ‘비환금성의 역설’이다. (중략)
주변을 둘러보라. 주식이나 부동산에 오래 투자한 사람 가운데 누가 부자인가. 이론적으로는 주식 투자자가 부자가 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이 부를 쌓은 경우가 많다. 많은 주식 투자자가 높은 지능과 기민함 그리고 남다른 지식을 가졌지만, 진득하게 자리를 지키지 못했기에 시간이 지나고 보면 부동산 투자자보다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점에서 부동산의 비환금성은 나름대로 가치를 지닌다. 적어도 (일시적인 폭락에 못 견뎌) 애써 모아놓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리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막아주는 잠금장치로서 말이다.
<박원갑(2017년, 한경BP), “박원갑의 부동산 투자원칙”88∼9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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