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북카페에서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우리나라 은행들은 일종의 독과점이기 때문에 갑질을 많이 한다” 면서 “우리나라 은행의 이런 독과점 시스템을 어떤 식으로든지 경쟁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 은행의 독과점 행태는 정부가 그냥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된다.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제공
금융당국의 ‘상생금융’ 주문 속에서 은행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일부 은행이 이달 초순 일찌감치 상생금융 방안을 내놨지만 당국이 이자이익 등을 거론하면서 압박을 이어가고 있어서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 수장들과 주요 금융지주 회장단은 오는 16일 간담회를 연다. 당국의 상생금융 주문과 정치권의 ‘횡재세’ 요구 등이 거센 가운데 마련되는 자리다. 지난달 30일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종노릇” 발언 이후 이달 들어 하나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는 상생금융 방안을 내놨다. 하나은행은 지난 3일 이자 캐시백, 서민금융 공급확대 등으로 1천억원 규모를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6일에는 신한금융이 소상공인·자영업자·청년 등 금융 취약계층을 돕기 위한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신한금융의 지원 규모는 하나금융보다 50억원 많은 1050억원이다.
주요 금융지주가 각각 1천억원의 지원 방안을 내놨지만 지금까지 당국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7일 하나금융과 신한금융이 내놓은 방안에 “제 판단이 중요한 게 아니다. 국민 공감대를 만족하는 방안을 찾으려는 것”이라고 발언했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6일 “올해 은행권 3분기 영업이익이 삼성전자와 엘지(LG)전자, 현대차를 합친 것보다 많다. 어떤 ‘혁신’을 했기에 올해 60조원의 이자이익을 거둘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제 판단이 중요한 게 아니다. 국민 공감대를 만족하는 방안을 찾으려는 것”
-김주현 금융위원장
대통령의 ‘종노릇’ 발언 이후 우리금융지주 등은 “상생금융 확대를 위해 회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었다”는 보도자료를 낼 정도로 기민하게 대응했지만, 당국의 압박 수위가 좀체 낮아질 줄 모르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는 못한 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서울 시내에 설치되어 있는 주요 은행들의 현금인출기. 연합뉴스
이 와중에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이 16일 간담회에 앞서 주요 금융지주들과 만나 관련 논의를 하려다 취소됐다는 소식이 은행권 안팎에 전해지기도 했다. 공동 대응보다는 ‘각개전투’ 형국인 셈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올해 초에 상생금융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당국에서는 은행들이 모이는 걸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은행들이 적절한 수준에서 합의하는 걸 막고 싶었던 것 같다”며, “지금은 은행연합회도 회장 임기가 곧 끝나는 상황이라 힘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당국에서도 ‘이거다’ 싶은 안을 아직 찾고 있는 것 같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당국의 생각도 고려해야 하고, 실무적으로는 취약계층에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등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16일 간담회에서 의견 수렴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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