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한 건어물시장에서 한 상인이 파리를 잡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에 있던 빚에 코로나19로 추가 대출까지 받으면서 사업으로 생긴 총부채가 2억6천만원이 넘어간다. 더는 버티기 힘들어 사업 정리와 신용회복 절차를 알아보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윤아무개씨는 22일 <한겨레>에 이렇게 말했다. 20대 때부터 우유 배달, 두부 장사 등을 하면서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차린 식당은 코로나19로 70% 이상 매출이 급감했고 월 순이익은 300만원 안팎으로 줄었다. 그나마 임대료와 생활비 등을 제외하면 대출금을 갚을 형편이 되지 않는다. 윤씨는 “방역조처가 완화됐지만 이미 밀린 임대료와 불어난 부채 원리금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은행 대출이라도 갚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토로했다.
새출발기금 도입이 금융권 반발과 형평성 불만으로 진통을 겪는 가운데 정작 윤씨 같은 소상공인들의 어려운 상황은 가려지고 있다. 윤씨처럼 한계 상황에 놓인 새출발기금 대상자는 약 25만명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이 가운데, 90일 이상 연체 신용불량자는 약 11만명으로 정부는 추산했다. 한국신용정보원 집계로 올해 2분기 기준 대출이 있는 자영업자 총 332만명 가운데 전체 새출발기금 대상자는 8%에 해당하며 원금 탕감 대상자는 대출이 있는 자영업자 중 3%다.
새출발기금은 윤씨처럼 코로나19 피해를 본 개인사업자 및 법인 소상공인으로, 저신용, 휴·폐업자, 단기연체자 등(부실 우려 차주)과 90일 이상 장기연체자(부실 차주)가 대상이다. 부실 우려 차주는 이자 감면 및 10~20년 장기 분할 상환을, 부실 차주는 재산과 소득을 넘는 무담보 과잉 채무에 한해 60~90% 원금 탕감이 지원된다.
이들이 한계 상황에 빠진 것은 강제적인 영업 제한 때문이다. 이에 따른 매출 감소를 빚으로 메운 자영업자의 1인당 대출 규모는 지난해 3분기 기준 평균 3억5천만원으로, 비자영업자 평균(9천만원)의 4배에 이른다. 최근 2년 반 동안(2019년 말∼2022년 6월 말)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자영업 다중채무자도 7만5000명에서 33만명으로 4.4배 늘었다. 이들 차주의 70% 이상은 연소득 4000만원 미만의 영세사업자다.
소상공인이 연체 직전 또는 연체자로 내몰렸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제한적이다. 현재 자영업자와 비자영업자 모두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 법원의 개인회생 및 개인파산을 통해 이자 감면, 분할 상환, 원금 탕감 등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신복위 채무조정의 경우 신용채무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에 담보채무 비중이 74.6%에 이르는 소상공인 빚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금융권 동의가 없으면 채무조정이 어렵다. 이에 소상공인들은 신복위보다 채무조정 범위가 넓지만, 처리 속도가 느리고 신용 불이익 기간도 긴 개인회생 및 개인파산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새출발기금과 같은 소상공인에 특화된 빠른 채무조정 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이창호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한겨레>에 “코로나19로 신용 불량 상황까지 간 소상공인들은 노출되는 것을 꺼려 정부에 자신들의 상황조차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다”며 “한계 소상공인은 새출발기금을 통해 재기를 돕고, 자산을 깎아 먹으면서 대출 연체를 안 하고 버티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이 없도록 대환대출 및 장기 분할 상환 확대, 임대료 지원 제도 신설 등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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