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경제일반

농촌기본소득 ‘백가쟁명’…논쟁 딛고 성공할까

등록 2021-06-14 11:32수정 2021-07-06 10:31

기본소득 공감대 확산 속에
대상, 방식 놓고 갑론을박도

모든 국민에게 소액 지급
청년, 농민 등 범주형도 가능

농촌기본소득 실험 성공하려면
정책 효과 잘 살펴야

선한 의도뿐만 아니라
일관성 있는 추진 필요
경기도가 올해 하반기에 시범 실시하는 농촌기본소득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015년 경기도 이천의 한 마을에서 주민들이 비닐하우스 모내기를 하고 있다. 이천/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경기도가 올해 하반기에 시범 실시하는 농촌기본소득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015년 경기도 이천의 한 마을에서 주민들이 비닐하우스 모내기를 하고 있다. 이천/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경기도가 하반기 시범 실시를 준비 중인 농촌기본소득의 다양한 쟁점과 과제를 다루는 토론회가 지난 8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렸다. ‘동명다형(同名多形)의 기본소득 시대, 농촌기본소득의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열린 ‘제4회 농촌기본소득 정책포럼’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경기도농수산진흥원,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민간 정책연구소 랩2050, 고려대 정부학연구소, 지역재단, 국회 기본소득 연구포럼, 경기도의회 기본소득 연구포럼 등이 함께 마련했다.

이날 포럼은 연구발표회와 100분 쟁점토론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첫번째 연구발표를 맡은 김자경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연구교수와 이재섭 연구원은 제주와 장고도 등 섬 지역의 공동자원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분배 사례를 제시하며 “공동자원의 분배 구조는 기본소득과 다르지만, 농촌기본소득의 효과를 이미 이뤄진 공동자원의 분배 성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며 공동체 활동이 활성화되고, 공동자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함께 관리하게 된 효과를 꼽았다.

송원규 녀름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부소장은 ‘농정패러다임의 전환과 농촌기본소득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한국의 농업 정책이 규모화, 대형화를 추구하던 생산주의에서 벗어나, 사람과 지역에 투자하는 정책 전환이 긴요하고, 그 수단으로 농촌기본소득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재교 우리사회적경제연구소 소장은 농촌기본소득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하고, 이를 ‘지역승수’라는 수단을 통해 측정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진 100분간의 쟁점토론은 좌장인 강위원 경기도농수산진흥원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날 토론의 주요 쟁점은 농촌기본소득의 위상이었다. 발제를 맡은 이원재 랩2050 대표는 “기본소득으로 가는 두가지의 길이 있다. 첫번째는 모든 사람에게 굉장히 적은 금액의 기본소득을 지급한 뒤에 조금씩 금액을 늘려가는 것이고, 두번째는 연령이나, 직업이나 지역 등을 범주로 사회수당을 지급하고 그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라며 농촌기본소득이 두번째 방안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토론자로 나선 서정희 군산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농촌기본소득은 전국민에게 실시하기 전에 ‘먼저 하는 기본소득’일 수도 있고, 전환적 농업 정책일 수도 있다. 이 둘은 서로 상충하지 않지만, 무엇이 우선순위인가에 따라 정책으로 검증하는 효과가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대표는 “생산주의 농업 패러다임을 전복하는 로컬(지역)의 반란으로서 농촌기본소득이 시행되길 기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무엇을 농촌기본소득의 효과로 볼 것인가도 주요 쟁점이었다. 정건화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농촌기본소득의 성과 지표에 자유시간의 증대와 공동체 활동의 증가뿐 아니라, 에너지 전환 등 새로운 형태의 경제활동과 일자리 증가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지은 대표는 “자급하는 소농민과 귀촌 청년, 전업주부, 예술가, 환경운동가, 그림자 노동을 수행하는 여성 농민, 사회적 경제 참여자 등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의 일과 삶의 영역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포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온 씨닷 연구원(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은 “농촌에는 농민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특히 여성,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 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기본소득이 주어질 때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가 경제적인 승수효과, 지역 활성화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농촌기본소득과 직업군 대상 농민기본소득 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김찬휘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은 전국으로 정책을 확대할 경우엔 농촌기본소득보단 농민기본소득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본소득의 지역경제 순환 효과, 사회적 연계 강화 등의 공동체 효과 등을 검증하려면 한 지역의 모든 주민에게 지급되는 농촌기본소득이 적절하지만, 전국으로 확대할 경우 농민기본소득이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농업은 식량창고 구실과 함께 기후위기 시대의 대응 산업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농촌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로는 열악하다는 것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열악성을 강조하는 논리의 단점은 어느 지역, 계층이 열악한지를 서로 경쟁하게 하는 구도를 만든다는 점이다. 김 부소장은 농민을 특정하기보단 농촌 지역을 획정하기가 어렵다는 점, 재원 규모, 전국민 기본소득과의 병행 여부 등을 근거로 농민기본소득을 주장하며 시범 정책으로서의 농촌기본소득과의 차이를 설명했다. 농민기본소득을 선구적으로 제안했던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은 두 정책의 근본적인 목표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박 실장은 “농민기본소득은 생산 효율주의를 추구하던 농업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이자, 이 패러다임을 전환하고자 하는 정책이고, 농촌기본소득은 국가균형발전의 측면에서 제기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박 실장은 자신이 농민기본소득을 주장한 취지는 “정확한 타깃이 있어야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라며 “농촌에 농민뿐 아니라 농업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노동자들도 있기 때문에 농민 대상으로 먼저 실시하고 농촌으로 확대하자는 방침이었다”고 말했다.

민경록 경기도 농정해양정책개발팀장은 경기도가 농촌기본소득을 추진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민 팀장은 “경기도는 청년기본소득도 있고, 재난기본소득도 시행한 적이 있지만, 기본소득이 가지는 의의, 효과 등을 보다 제대로 검증하고 전국민에게 알리고 싶은 취지가 있었다”며 “특히 농촌 지역의 주민들은 활동 범위가 넓지 않고, 자신의 지역 내에서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에 대한 효과 분석을 할 때 도시보다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고, 지역의 인구감소 대응이나 기존 농업 정책의 전환 등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고 말했다. 특히 농촌기본소득의 사업 기간을 5년으로 계획하는 이유가 농촌 지역에 인구가 유입되는 효과를 살펴보기 위함이라고도 민 팀장은 전했다.

농촌기본소득이 차후에 어떤 정책으로 평가받을지도 이날 논의의 주제였다. 이원재 랩2050 대표는 “전세계적으로 기본소득 실험이라는 것들이 굉장히 많았지만,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비민컴 실험을 비교할 수 있다. 둘 다 큰 관심을 받고 시작했지만, 지금의 평가는 전혀 다르다. 핀란드는 전세계에 많은 영향을 준 실험이 되었고, 스페인은 세상에 미친 영향의 측면에서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핀란드 실험에선 실업급여 개편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일관성 있게 정책 설계를 했지만, 바르셀로나에선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바르셀로나는 굉장히 선한 동기를 가지고 이 정책을 추진했지만, ‘도시 사람들에게 왜 주는 거야’라는 문제 제기가 나오니까 도시의 빈민 주거 지역으로 정책 대상을 선회하는 등 갈팡질팡했다. 결국 전세계 기본소득 정책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는 선례가 되었다”고 말했다.

농촌기본소득이 지자체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일방적으로 실시하는 정책이 아니라, 주민이 주체가 되는 정책이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주온 연구원은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정보의 접근성을 높여 기본소득의 의미를 같이 생각해보는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좌장을 맡은 강위원 원장은 “농촌기본소득이 기본소득의 원칙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지적까지 받으며 여러 사회적 논쟁을 일으키고 있지만, 이 시범 사업을 통해 실제 현장에서는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를 살펴보고, 하나의 모델을 만드는 데 성실한 집행을 해보고자 한다”며 집행 주체로서의 의지를 밝혔다.

윤형중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philyoon23@gmail.com

지난 8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제4회 농촌기본소득 정책포럼에서 이원재 랩2050 대표(맨 오른쪽)가 발표하고 있다. 이날 포럼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경기도농수산진흥원,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민간 정책연구소 랩2050, 고려대 정부학연구소, 지역재단, 국회 기본소득 연구포럼, 경기도의회 기본소득 연구포럼 등이 함께 마련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지난 8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제4회 농촌기본소득 정책포럼에서 이원재 랩2050 대표(맨 오른쪽)가 발표하고 있다. 이날 포럼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경기도농수산진흥원,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민간 정책연구소 랩2050, 고려대 정부학연구소, 지역재단, 국회 기본소득 연구포럼, 경기도의회 기본소득 연구포럼 등이 함께 마련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딥시크 쇼크에...이복현 “주식시장 변동성 커질 수도” 1.

딥시크 쇼크에...이복현 “주식시장 변동성 커질 수도”

‘보조배터리 수하물’이 에어부산 화재 원인? 이르면 31일부터 감식 2.

‘보조배터리 수하물’이 에어부산 화재 원인? 이르면 31일부터 감식

미국, 반도체·배터리 보조금 ‘원점 재검토’ 예고…한국 ‘속수무책’ 3.

미국, 반도체·배터리 보조금 ‘원점 재검토’ 예고…한국 ‘속수무책’

‘중국산 인공지능’ 딥시크 충격…‘워룸’ 꾸려 대응 나선 빅테크 4.

‘중국산 인공지능’ 딥시크 충격…‘워룸’ 꾸려 대응 나선 빅테크

‘이거 르노 차 맞아?’ 그랑콜레오스, 판매량 역주행 이유 있네 5.

‘이거 르노 차 맞아?’ 그랑콜레오스, 판매량 역주행 이유 있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