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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농민수당’이 농업을 사람중심으로 바꾸는 정책이라면 ‘농촌기본소득’은 도시집중 막고 농촌 살릴 생존실험

등록 2021-03-10 10:21수정 2021-03-10 11:04

기획특집/기본소득 사회실험
농민기본소득 연구자의 기대

보편적 소득지원 말고는 희망 없어
유럽, 농정예산 50~70% 직접 지원
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이 농민기본소득 연구를 위해 2015년에 방문했던 충남 금산군의 한 마을이다. 이 농촌 마을은 당시 인구가 줄어 26가구만 남은 상황이었다. 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제공
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이 농민기본소득 연구를 위해 2015년에 방문했던 충남 금산군의 한 마을이다. 이 농촌 마을은 당시 인구가 줄어 26가구만 남은 상황이었다. 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제공
2015년 농민기본소득 연구를 처음 수행하면서 보고서 제목을 ‘충남형 농촌주민 기본소득 도입 방안 연구’로 정했다. 농업·농촌·농민의 위기, 즉 3농의 위기에 농민기본소득이 우선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농촌의 현실을 고려하면 중장기적으로 농촌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연구를 하면서 충남 금산군의 한 마을을 대상으로 농민기본소득과 농촌기본소득을 시뮬레이션했다. 금강의 상류인 적벽강 기슭에 위치한 이 마을은 생태적으로는 뛰어난 마을이지만 금강 상류 친수구역이라 개발 행위가 제한되고 오지이다 보니 교통도 불편해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떠나 소멸위험에 직면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를 했던 마을 이장이 79살이었을 정도로 남은 주민 대부분이 고령자였다.

전체 26가구를 대상으로 한 농촌기본소득 시뮬레이션은 크게 마을 전체 주민에게 지급할 경우와 농가만 지급할 경우, 그리고 농가당 지급할 경우와 개별 농민당 지급할 경우로 나눠 차이점을 분석했다. 농업의 위기는 곧 농민의 위기이기 때문에 농가에 대한 기본소득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나 현실에서는 농민이 아닌 농촌의 주민에 대한 고려도 필요했다. 연구 뒤 여러 변화가 있었다. 충남도에서는 기존의 농업보조금을 기본소득 형태로 바꾸어나갔다. 전남 해남에서 시작된 농민수당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농촌 주민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 도입은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니 인구 문제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우리나라 농촌의 인구감소 문제는 생존과 직결될 만큼 심각한 문제다. 최근 언론 보도에서 3만명 이하 인구의 지방자치단체 명단이 나오고 있는데 필자가 2019년 9월에 농민수당(농민기본소득) 강연을 위해 찾아간 경북 영양군의 인구는 당시 1만7065명이었다. 섬 지역인 울릉군을 제외하고 내륙에서 인구 만명대 지자체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1년여 시간이 지난 영양군의 인구는 1만6638명(2021년 1월 기준). 이러한 추세로 인구가 계속 감소한다면 과연 영양군이 존재할 수 있을까? 강연을 마친 뒤 한 농민은 “농민수당만으로는 택도 없다. 영양군이 살려면 ‘군민수당’을 주어야 한다. 안 그러면 영양군은 사라질 것”이라고 성토했다. 영양군의 한해 예산은 30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 중 일부만 사용한다면 군민수당, 즉 농촌기본소득이 가능할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쉽지 않는 문제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결정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생존을 위한 마지막 실험’, 농촌기본소득이 등장한 것은 이러한 보편적 소득지원 방법 말고는 우리 농촌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은 그동안 산업주의와 개발주의에 의해 철저히 붕괴되고 파괴되었다. 1990년대 초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상 타결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농산물시장 개방은 우리나라 농업의 붕괴를 가져왔다. 정부는 시장 경쟁력을 위해 농업의 규모화, 시설화, 정예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그로 인해 자본과 투자가 소수 농가와 기업에 집중되었다. 대다수의 농가는 농정에서 배제되고 소외되어 농촌을 떠나야만 했다. 농업을 떠나도 농촌을 떠나지 않는 유럽 국가와는 달리 우리나라 농촌 인구는 도시의 값싼 산업노동력으로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 자본은 농촌을 말살했다. 농촌은 줄곧 개발주의 실험의 대상이었다. 각종 외국의 좋은 사례를 들여와 우리나라 농촌에 이입을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농촌 관광, 마을단위 사업, 지역단위 개발, 농촌산업화 사업 등이 난무하지만 농촌이 활성화되고 희망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별로 없다. 일부 마을, 일부 지역, 일부 사업체의 성공 모델을 일반화하는 정부의 홍보에 이제 농촌 주민들은 별로 관심도 없고 속지도 않는다. 농촌에 쏟아부은 막대한 개발 사업비를 모아 그냥 농민과 농촌 주민에게 엔(n)분의 1로 나눠 주는 것이 차라리 더 낫다고 말한다. 틀린 말도 아니다. 유럽은 농정예산의 50~70%를 농민에게 직접 지원한다. 농업·농촌이 가지고 있는 공익적 기능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많아야 20%에 불과하다. 유럽은 평균 경작면적이 몇십㏊이기 때문에 면적단위 농업직불금을 지급해도 농민들이 어느 정도 살아갈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농가 평균 경작면적이 1.5㏊이기 때문에 면적단위 직불금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최근 전국 지자체에서 도입하고 있는 농민수당이 우리나라 농업 정책을 사업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바꾸는 혁명적 정책이라면 농촌기본소득은 도시의 과도한 집중을 막고 생태계와 공동체를 살리는, 생존을 위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 시대 세계는 농촌의 공익적, 다원적 가치에 더 주목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오히려 수도권과 대도시 집중을 더욱 가속화하는 부동산 정책을 내놓고 있다. 과연 이게 최선의 정책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전환을 요구하는 시대, 다행히 경기도에서 올해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을 시작한다.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은 우리나라에서 한 지역을 대상으로 온전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최초의 실험이자 우리 농촌의 생존과 소멸이라는 갈림길에서 실행되는 중요한 실험이다. 이 사회실험을 통해 농촌기본소득이 인구 감소와 기후위기 시대에 농촌과 생명을 지키는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하길 기대한다.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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