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기본소득의 결과가 신뢰할 만한 증거가 되기 위해선 정책이 시행될 농촌과 비교 대상이 될 지역을 무작위로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은 농촌 들녘에서 논도랑을 살피는 농부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코로나19라는 방아쇠가 당겨진 이후 우리는 거대한 전환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징후들을 곳곳에서 목격하고 있다. 이 시기에 경기도에서 구상하고 있는 농촌기본소득 실험은 기대가 크다.
행정구역을 단위로 하는 중규모 이상의 기본소득 실험은 아직 국내에서 실행된 적이 없다. 서울시에서 청년기본소득을 준비한 바 있었고, 서초구에서도 청년기본소득 실험이 논의되고 있지만, 실행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 실험은 국내 최초의 엄밀한 기본소득 정책 실험으로 기록될 수 있는 소중한 시도다.
정책 실험을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쌍둥이 한명에게는 평소처럼 학습을 하게 하고, 다른 한명에게는 게임을 활용한 학습을 시켜서 일정 기간 이후에 두 사람과 실험 전후를 비교하여 얼마나 게임 학습이 교육 성과에 영향을 주었는지 측정하는 것이다. 전자를 통제집단이라고 하며, 후자를 실험집단이라고 한다. 쌍둥이 예를 든 이유는 그만큼 두 집단이 유사해야 실험에 대한 순수한 효과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쌍둥이를 찾아 실험하기는 어렵다. 대신 ‘무작위’로 대상을 선정하면 쌍둥이와 유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얻은 결과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수집된 정책의 증거들 중 가장 신뢰할 만하다고 평가받는다. 예를 들어, 통제집단 없이 정책을 시행하기 전과 후만을 비교할 경우 효과가 정책 때문인지, 경제나 다른 효과 때문인지 알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이렇듯 유용하고 중요한 기본소득 정책 실험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까?
첫째, 꼼꼼한 준비와 실행이 쉽지 않다. 실험을 통해 정책의 효과를 분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준비부터 평가까지의 엄밀성이다. ‘오염된 결과’로는 실험을 한 이들도 효과를 알 수 없고,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이들을 설득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핀란드 실험 결과는 세계적으로 많이 논의되었지만, 설계 과정에 아쉬운 점이 많은 연구였다. 실험 전 사전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거나 실험 중간에 정책 변화가 발생하면서 기본소득의 순수 효과 측정은 더 어려워지기도 하였다. 경기도의 농촌기본소득 실험도 쉽지 않은 질문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자들이나 기초연금 대상자들이 실험에 참여하면서 수급권을 잃을 수 있는데 이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등이 그중 하나다.
둘째, 소요될 많은 자원에 대한 설득이 쉽지 않다. 정말 좋은 정책이면 그냥 하면 되고, 아니면 안 하면 되지, 왜 그토록 많은 돈과 자원을 동원하여 실험을 하는가. 물론, 답은 있다. 좋은 정책이라 믿었던 정책이 혹시라도 그렇지 않을 수 있고, 좋은 정책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세밀한 설계가 중요하며, 실험은 이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실험이 낭비라고 말할 것이다.
셋째, 실험이 윤리적 문제나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다. 시민이 실험 대상인가? 왜 누구는 실험에 참여하여 돈을 받고, 누군가는 받지 않는가? 왜 부자도,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주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넷째, 성과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가 쉽지 않다. 기본소득의 매력을 자유와 안정, 궁극에는 건강한 사회경제 체제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자유’, ‘안정’, ‘사회경제의 건강’은 어떻게 측정하고,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다섯째, 성과는 실험 시간과 연관성을 갖고 있다. 자유나 건강한 사회경제 체제는 기본소득의 중장기적 성과에 가깝다. 기본소득이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던 직장이나 가족에서 탈피하게 만들 수 있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 소득활동을 멈추게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단기적 지표로는 부정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여러 제약으로 실험은 단기간만 허락될 수도 있다.
그러면 제대로 된 기본소득 실험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실험 준비부터 실험 종료 이후 평가까지 전 과정을 계획하고 꼼꼼하게 검토할 단일한 기획팀을 중심으로 한 거버넌스가 필수적이다. 실험 계획과 실행 과정에는 상당히 많은 이슈가 있다. 준비, 실행, 평가 과정을 담당할 주체가 분리되어 있으면 엄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기획팀에는 실험의 행정실무를 맡을 이들 이외에 중앙정부와 경기도 내에서 행정적 업무를 조율할 유능한 관료, 그리고 엄밀한 계획을 수립하고, 평가를 담당할 실력이 있는 외부 연구진이 참여해야 한다. ‘내부자들’로만 구성된다면 그 결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또한 대중과의 소통 역시 중요하다. 대중들의 비판적 질문들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답을 하며, 이 어젠다가 왜 중요한지, 미래를 위해서 왜 이 실험이 필수적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실험 대상 선정 과정부터 실험 과정을 투명하게 하면서 실험이 왜곡되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실험 기간을 고려하면서 현실적으로 산출할 수 있는 실험의 성과 변수를 도출해야 한다. 인식조사 결과도 충분히 유용할 수 있지만, 인식보다는 구체적인 행위가 수치화되는 것이 항상 더 설득력이 높다. 관련한 빅데이터의 활용은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자연과학의 실험이 아니고 사회과학 실험이다. 온도와 기체 부피와의 관계는 50년 전과 지금이 같고, 유럽이나 한국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사회과학의 결과는 시간과 장소에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의 결과가 모든 것의 확답일 수는 없다. 다만 답을 찾아가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 실험은 과학인 동시에 정치적 과정이다. 최영준 연세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