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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경기도 하반기 농촌기본소득 실험

등록 2021-03-10 10:13수정 2021-03-10 11:03

기획특집/기본소득 사회실험

실업자·빈곤층 등 특정 집단 아닌
특정 지역 모든 주민에 보편적 지급
다음달 지역·기간·금액 등 발표

농촌소멸 막기 위한 전향적 정책
대상 선정 갈등 최소화 과제
타 정책·복지급여 교통정리 등 필요

재원마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의욕 효과 등 확인 어렵지만
충분한 사회적 토론 유도에 의의
기본소득은 불평등의 해법일까 혹은 과도한 재원에 비해 효과가 적고 부작용이 큰 정책일까? 기본소득처럼 영향력이 큰 정책을 미리 검증해볼 순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정책이 시행된다. 경기도가 올해 하반기 시행할 예정인 농촌기본소득이다. 경기도는 지난 4일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에 관한 조례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고, 도민 의견을 24일까지 청취한 뒤 기본소득을 실시할 농촌 지역, 지급 기간과 금액 등을 확정해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경기도가 추진하는 농촌기본소득은 특정한 정책을 전국민에게 실시하기 전에 효과를 미리 검증해보는 정책실험의 의미가 있다. 지금껏 기본소득을 한 국가 단위에서 전면적으로 시행한 정부는 없었다. 1982년부터 ‘영구기금 배당’이란 이름으로 1년 이상의 거주민에게 현금을 지급하고 있는 미국 알래스카주는 천연자원 판매 수익으로 안정적인 재원을 가지고 있는 특수한 경우다. 그 밖의 사례들은 기본소득의 효과를 미리 검증하기 위한 정책실험들이었다. 핀란드는 2015년에 집권한 중도우파 연립정부가 2017년부터 2년간 장기 실업자를 대상으로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했고, 캐나다 온타리오주와 스페인 바르셀로나시, 인도와 나미비아 등에서도 빈곤층을 대상으로 수급 조건을 최소화한 현금 지급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전세계 기본소득 지지자들의 연대기구인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에 따르면, 기본소득이란 ‘모든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개별적·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현금’이고, 이들 정책실험은 기본소득의 가장 중요한 요건인 무조건성과 보편성에 미달한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실험의 결과 역시 기본소득 전반의 효과라기보다는 특수한 상황이나 특정 집단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한정된 해석밖에 할 수 없었다.

경기도 농촌기본소득은 실업자나 빈곤층 등 특정 집단이 아닌 한 지역의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된다는 점에서 기존에 시도된 기본소득 정책실험과는 다르다. 이번 농촌기본소득에선 농민뿐 아니라, 다른 직업의 종사자도 기본소득을 받게 된다. 나이, 소득, 취업 여부 등도 가리지 않는다. 특정 지역에 거주하고 있느냐는 단일 기준만이 있을 뿐이다. 기본소득이 소득 안정, 삶의 만족도, 노동 의욕과 노동시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정책이 시행되는 셈이다.

농촌기본소득이 의미 있는 정책실험이 되려면 과학적인 실험 설계 방식인 ‘무작위 통제 실험’(RCT·Randomized Controlled Trial)이 제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무작위 통제 실험이란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대상과 비교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무작위로 선정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기본소득의 효과인지, 애초에 다른 집단이기 때문에 발생한 효과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이 이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실험 중에 적극적 구직 노력을 하지 않으면 실업급여를 삭감하는 정책을 실시해 피실험집단과 비교집단의 노동 의욕을 바꾸면서 기본소득의 정책 효과를 엄밀히 살펴보는 게 어려워졌다. 이처럼 다른 정책들과 어떻게 연계되고, 효과를 주고받는지도 농촌기본소득을 시행할 때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경기도의 농촌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을 사전에 검증한다는 목적 외에 소멸 위기에 처하고 갈수록 도시와의 격차가 심해지는 농촌 지역을 위한 전향적인 정책이란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9년 기준 2인 이상 가구의 평균 소득은 도시가 6616만원, 농가가 4118만원이다. 전체 인구에서 만 65살 인구의 비중인 고령화율은 같은 해 농촌이 30.4%, 도시가 13.8%로 차이가 크다. 정부는 농산물 시장을 점차 개방하면서 반대급부로 농업 분야에 다양한 지원 사업을 실시해왔다. 영농 기술을 보급하고, 농업의 규모화, 산업화를 지원했으며 재배 면적 기준으로 직불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어떤 정책도 도농 간 소득 격차를 줄이거나, 청년 인구의 농촌 이탈을 막을 수 없었다. 농촌 지역에서도 재배 면적에 따라 직불금 수급액의 격차가 커졌고, 농가 가구주에게만 지원이 집중되는 한계도 있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전남 해남군이 2019년 처음 도입한 농민수당이 불과 1년여 만에 전국의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이 채택하면서 확대됐고, 농민뿐 아니라 농촌 지역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모이고 있다. 경기도의 농촌기본소득은 농촌 주민을 대상으로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정책이 다른 정책 대비 어떤 효과를 보여주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경기도가 추진하는 농촌기본소득이 여러 시사점을 줄 수 있기도 하지만, 이 시도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필요하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의 대상이 장기 실업자였고, 비교 대상도 기존 실업급여를 받는 장기 실업자이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일반적인 효과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한계가 분명했다. 실업급여는 일해서 번 돈만큼 삭감되지만, 기본소득은 노동 소득에 더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실험 설계상의 한계보다는 노동일수와 삶의 만족도 등의 결과만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경기도의 농촌기본소득은 재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본소득의 재분배 효과를 확인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기본소득으로 인한 증세가 노동 의욕에 미치는 효과도 살펴볼 수 없다. 대신 농촌기본소득은 소득 안정이 노동 의욕에 미치는 효과와 농촌 지역 내에서 기본소득의 승수효과(연쇄적인 지출로 인한 경제적 효과), 농촌 공동체에 미치는 효과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농촌기본소득이 풀어야 하는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기본소득이 시행될 농촌 지역을 선정해야 한다. 지역 선정은 사회적 자원을 특정 집단에만 배분하는 결정으로 어느 정도의 갈등을 피할 수 없다. 경기도는 인구소멸 위험지수, 고령인구 비율, 농업과 제조업 종사자 비율, 도시적 토지 이용률, 사회복지시설 대비 인구 비중 등 10개 지표를 활용해 1차적으로 농촌 지역을 선별한 뒤에 그중에서 최종적으로 지역을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을 진행하면서 과학적인 실험 설계가 반영되고, 갈등을 최소화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소득이 생기면 삭감되는 복지급여와는 어떻게 정리를 할 것인지, 농촌기본소득이 지급되는 기간에 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정책들을 어떻게 통제할지 등도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농촌기본소득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효과를 분명히 하고, 차후에 살펴볼 지표를 분명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본소득은 조세와 복지 등 재분배 체계 전반에 걸쳐 거대한 변화가 수반되는 제도다. 부작용과 우려되는 점이 논의되고, 다른 대안들과 비교한 뒤에도 국민적 지지를 얻었을 때 실시할 수 있는 정책이다. 기본소득이든 다른 대안이든 제대로 된 논의가 축적된 만큼 현실화되거나, 현실에서 순기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면에서 경기도 농촌기본소득의 중요한 의의 중 하나는 기본소득에 대한 충분한 토론을 유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윤형중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philyoon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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