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가 지난 1월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열어 위원장 내정까지의 경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와 관련해 좀 더 자세한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다만 이 부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 자체에 대해선 긍정 평가를 내놨다. 이 부회장과 비판 여론을 모두 염두에 둔 절충형 자세를 준감위가 취한 셈이지만, 삼성으로부터 완전한 독립기구가 되기 어려운 한계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준감위는 7일 서울 삼성생명 서초타워에서 정기회의를 열어 “이 부회장의 답변 발표가 직접 이뤄지고 준법 가치 실현 의지를 표명한 점에 대해 의미 있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준감위는 이어 “준법 의무 위반이 발생하지 않을 지속 가능한 경영 체계 수립, 노동 3권의 실효성 있는 보장, 시민사회의 실질적 신뢰 회복을 위한 실천 방안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조만간 좀 더 자세한 개선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삼성 관계사에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준감위가 내놓은 이런 입장은 준감위가 지난 3월11일 답변을 요구한 내용을 이 부회장이 전날 회견에서 빠짐없이 언급한 행위 자체에 대해선 일단 긍정 평가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삼성 관계사에 실효성 있는 개선 방안 마련을 요구한 것은 이 부회장의 회견을 두고 “구체성이 떨어진다” “세부 로드맵이 없다” 등 비판적인 여론을 동시에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준감위가 외관상 이 부회장 등 삼성 쪽 이해와 비판 여론 사이의 간극을 절충하는 모양새를 취한 셈이다. 준감위가 이 부회장의 회견에 부정 평가를 내릴 경우 회견 자체의 의미가 퇴색될 뿐만 아니라 이 부회장이 관련된 재판과 수사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대로 비판 여론을 고려한 메시지를 덧붙이지 않았다면 준감위의 태생적 한계가 재차 불거질 여지가 컸다. 준감위는 이 부회장의 대법원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의 요청에 따라 지난 2월 출범한 조직인 탓에 이 부회장의 ‘감형 도구’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이런 사회적 의심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일방적인 긍정 평가’만 담은 입장문을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이날 준감위 회의는 위원 간 격론을 예고했다. 일부 위원들은 전날 이 부회장 회견의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다른 위원들은 이 부회장이 사과 회견에 직접 나선데다 준법 의지를 명확히 선언한 것 자체를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위원은 회의에 앞서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위원들 생각이 다 같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4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 부회장 사과에 대한 준감위 입장 논의’에서는 여러 의견이 오간 끝에 절충안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회의가 끝난 뒤 한 위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구체적 실행 방안 나타나지 않아서 진정성이 떨어지는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것에 대해 위원들이 대체적으로 공감했다”고 전했다.
준감위는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인 김지형 전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김우진 서울대 교수(경영학), 봉욱 변호사(전 대검찰청 차장검사),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등 6명이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 쟁점은 삼성이 준감위에 가져올 구체적인 개선 방안의 내용이 될 전망이다. 실효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수준의 개선 방안을 삼성이 내놓을 경우 준감위 위원 간 의견 충돌이 커지면서 파행에 접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구본권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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