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과문 내용 가운데서도 ‘무노조 경영’을 중단하겠다는 약속은 일단 삼성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무노조 경영은 창업자인 이병철 선대 회장 때부터 고수돼왔다. 초헌법적인 ‘신앙’이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때문에 빚어진 사회적 갈등 비용도 막대했다. 이 부회장의 약속이 빈말에 그치지 않으려면 노동 관련 법규의 문구뿐만 아니라 그 정신과 취지까지 철저히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사과문은 그런 진정성을 기대하기에는 한참 모자라 보인다. 파기환송심 재판부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 떠밀리다 마지못해 사과문을 내놓았다는 노동계의 평가 때문만이 아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경영 전략이 아니었다.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무서운 폭력이었다. 피해자 가운데 유명을 달리한 이들도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사과문에는 추상적이고 두루뭉술한 표현만 있을 뿐, 이들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언급도 담겨 있지 않다.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서비스센터 노조원 최종범씨에 이어 2014년 양산센터분회장 염호석씨가 삼성 쪽의 노조 탄압에 반발해 목숨을 끊었다. 삼성은 염씨의 친아버지와 경찰을 매수해 고인의 주검을 탈취하기까지 했다. 노조 탄압과 직접 관련되지는 않았지만, 삼성반도체의 고 황유미씨를 비롯해 수많은 산업재해 희생자와 피해자들도 있다. 무노조 경영이 아니었다면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거나 좀 더 일찍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희생은 몇 마디 유감의 말로 보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서초 사옥에서 사과문을 읽고 있던 순간에도 바로 앞 25m 철탑 위에서는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332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25년 전 삼성테크윈에서 노조를 만들려다 해고된 뒤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의 삶을 살아왔다. 김씨는 이 부회장의 사과문 발표 뒤 세번째 단식에 들어갔다. 김씨의 목숨 건 싸움을 외면하면서 무노조 경영 중단을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 부회장의 약속은 미래에 대한 것이기 전에 당장 사람의 생사가 걸린 시급한 사안이다. 이 부회장은 서둘러 김씨의 요구를 경청하고 수용하기 바란다. 농성 철탑은 집무실에서 걸어서 채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