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10일 일본 수출규제와 관련해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계 주요인사 초청 간담회에서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첫번째) 등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재벌이 소재·부품·장비의 과도한 일본 의존에서 탈피하기 위한 국산화를 총수일가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 규제 회피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6일 자산 5조원 이상 재벌이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를 위해 총수일가 소유 계열사와 거래할 경우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를 적용받지 않도록 예외를 인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공정거래법은 재벌 계열사 간 거래 중에서 효율성·긴급성·보안성 등 이른바 3대 예외요건에 해당하면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를 하지 않는다. 공정위 기업집단국의 정창욱 총괄과장은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는 법·시행령 외에 구체적인 법적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운용하는데, 이를 예규 형태의 ‘심사지침’으로 제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면서 “심사지침에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계열사 간 거래도 예외요건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불가피하게 계열사를 통해 부품·소재·장비를 조달하는 경우 법 위반 우려가 없도록 해달라는 재벌의 요청을 정부가 수용한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5일 발표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에서 이를 위해 공정거래법 상 구체적인 거래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현대차 등 재벌 기업들은 지금도 삼성전기, 현대위아 등과 같은 계열사를 통해 소재·부품을 조달하고 있지만,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 법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총수일가 지분이 상장사 30% 이상(비상장사는 20%)일 때만 적용되는데, 이들 회사는 총수일가 지분이 아예 없거나 작기 때문이다. 삼성전기의 총수일가 지분은 없고, 현대위아는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이 1.95%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재벌들의 요청은 중소기업을 통한 국산화가 어렵다는 이유를 내세워, 총수일가 지분이 많은 회사를 신설한 뒤 주력기업에 소재·부품을 공급하는 방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공정위는 이와 관련 국산화를 위해 재벌이 총수 지분이 있는 계열사로부터 소재·부품·장비를 비싸게 사주거나, 일감을 몰아주더라도 3대 예외조건 중 ‘긴급성’을 적용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은 긴급성 요건과 관련해 “경기급변, 금융위기 등 회사 외적 요인으로 인한 긴급한 사업상 필요에 따른 불가피한 거래”로 규정되어 있다. 공정위는 “일본의 갑작스러운 수출규제는 경기급변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관건은 ‘긴급성’을 언제까지 인정할 것이냐다. 자칫 내부거래가 장기화하는데도 계속 긴급성을 인정하면 특혜라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재벌은 ‘효율성’ 인정도 요구하고 있다. 시행령에서는 “계열사 간 부품·소재 거래를 통해 다른 사업자와의 거래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비용절감, 판매량 증가, 품질개선, 기술개발 등의 효율성 증대효과가 인정되는 경우”로 규정한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번 사태와는 무관해 보인다”며 부정적이다.
시민단체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예외인정에 반대한다. 경제개혁연대의 이총희 회계사는 “국산화를 위해 회사를 신설하거나 다른 기업을 인수할 수 있지만, 왜 법인 대신 총수일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라며 “이는 부품·소재 거래라는 내부정보를 이용한 회사기회유용 혐의도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금도 예외인정 요건이 너무 폭넓게 되어있어 규제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시행령 대신 법에 보다 명확히 규율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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