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사장,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이학수 전 삼성 전략기획실장(부회장). 그래픽_고윤결
삼성 컨트롤타워(사령탑)로 불리는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TF) 책임자인 정현호 사장이 11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사기 및 증거인멸 혐의와 관련해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이에 앞서 삼성 컨트롤타워의 수장이었던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과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도 사법처벌을 받은 바 있다.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던 삼성의 2인자들이 잇달아 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흑역사’가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삼성의 컨트롤타워 수장을 맡은 사람은 정현호 사장을 포함해 최지성·김순택 미래전략실장, 이학수 전략기획실장 등 4명이다. 이 가운데 이학수·최지성 실장은 형사처벌을 받았고, 정현호 사장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건희 회장의 ‘복심’으로 불린 이학수 실장은 2008년 삼성 특검수사에서 삼성에스디에스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발행과 관련해 배임혐의로 처벌됐다.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서도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에 320억원의 검은돈을 건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2005년 안기부 엑스(X)파일사건 때도 정치인·검사들에게 불법자금을 건넨 혐의가 드러났지만, 검찰의 무혐의처분으로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이재용 부회장의 ‘가정교사’로 불린 최지성 실장은 2017년 국정농단세력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로 1·2심에서 유죄선고를 받고,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재무·국제금융통인 정 사장은 1990년대 후반 이 부회장이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유학할 때 뒷바라지를 하며 인연을 맺은 최측근 인사다. 2017년 2월 미전실 해체로 핵심임원들이 동반 퇴진하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인사팀장 출신인 정 사장은 팀장급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2017년 말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가 신설되자 책임자로 중용됐다. 삼성 안팎에서는 사업지원티에프를 사실상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미니 미전실’로 부른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정 사장이 하버드에서 이 부회장과 인연을 맺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한다. 삼성전자 홍보실은 “이 부회장은 일본 게이오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치고 1995년 하반기부터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반면 정 사장은 1993년 10월부터 1995년 7월까지 하버드에서 공부한 뒤 귀국해서 삼성전자 국제회계그룹장을 맡았다”면서 “정 사장은 미국 하버드에서 이 부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은 미전실을 해체하면서 정경유착 혐의가 제기된 핵심임원들을 ‘적폐’로 규정하고, 그룹 차원의 대관기능을 없애는 등 변화의 움직임을 보였다. 사업지원티에프에 대해서도 “전자 계열사 간에 사업 관련 이슈에 대한 공동 대응과 협력 문제를 협의하고, 시너지를 끌어내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과거 미전실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사업지원티에프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주도한 혐의가 잇달아 드러나면서, 과거 삼성 컨트롤타워의 ‘불법 DNA’가 달라진게 없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학수·최지성 부회장과 정현호 사장은 모두 삼성의 경영권 승계 관련 사건에 연루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김우찬 경제개혁연대 소장(고려대 교수)은 “이학수 실장의 삼성에스디에스 BW사건, 최지성 실장의 뇌물사건, 정현호 사장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은 모두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돼 있다”며 “삼성 컨트롤타워가 이름은 바뀌었지만 총수의 지배력 유지와 경영권 승계를 위한 조직이라는 본질은 변치않은 셈”이라고 분석했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삼성 2인자들의 흑역사를 끊으려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해 정당한 법적 실체를 갖춰야 한다. 또 총수가 주식지분에 의해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한 승계작업을 하는 대신 능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아 주주·직원의 지지를 얻고, 그럴 자신이 없으면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대주주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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