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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승자의 저주’ 교훈 때문인가, ‘연막전술’인가

등록 2019-05-05 19:00수정 2019-05-06 11:27

Weconomy | 재계 인사이드
아시아나항공 유력 인수후보 잇단 ‘손사래’
SK·한화·CJ “경쟁력·시너지 의문” 한목소리
제주항공 보유한 애경만 “관심 갖고 검토”
금호의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실패 교훈
웅진 자금난…현대차도 한전 땅 인수 논란
외형 확장보다 경쟁력·사업구조 재편 중점
몸값 상승 차단 위한 의도적 거리두기설도
정부가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정상화 추진 방안 등을 공개한 날인 지난달 23일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정상화 추진 방안 등을 공개한 날인 지난달 23일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 모습. 연합뉴스

‘승자의 저주’ 교훈 때문인가, 과열경쟁을 막기 위한 ‘연막전술’인가.

5일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후보로 에스케이(SK)·한화·씨제이(CJ)·신세계·애경 등 여러 그룹이 거론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대부분 ‘손사래’를 치며 거리를 두고 있다. 왜일까?

인수금액이 최대 2조원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자금력이 앞선 것으로 평가되는 곳은 에스케이다. 그러나 에스케이 쪽은 “그룹 차원에서 인수를 안 한다고 공식 답변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적극적으로 선을 긋고 나섰다. 박정호 에스케이텔레콤 사장도 인수설을 부인했다. 한화도 인수 검토를 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다. 한화그룹 고위 임원은 “언론이 기존 면세점 사업과의 시너지를 강조했지만 (한화가 면세점의) 철수를 발표하지 않았느냐”며 “롯데카드 인수 불참으로 인한 인수자금 확보설도 언론이 만든 얘기”라고 말했다. 한화는 공식 기업설명회(IR)를 통해 부인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씨제이도 “처음부터 (인수 검토는) 전혀 아닌데, 언론에서 확인도 안 하고 쓴다”고 부인했다.

인수 의사를 밝힌 곳은 제주항공을 보유한 애경 한 곳뿐이다. 애경 임원은 “관심을 갖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애경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최근 발언이 자신들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인수 후보를 선정할 때 경영 성공 경험과 그룹 내 시너지 효과 등을 종합 판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인수전에 거리를 두는 그룹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과 시너지 효과가 떨어지는 점을 내세운다. 에스케이는 “노후 비행기가 많고 부채가 6조원 이상(부채비율 814%)으로 많으며, 항공산업 특성상 비행기 사고 등 리스크 수위도 높다”고 설명했다. 한화도 “항공기 엔진 생산과의 시너지 효과를 이야기하지만 제작과 서비스는 별개고, 솔직히 아시아나가 비행기를 얼마나 사겠느냐”며 “아시아나가 대한항공과 저비용 항공사 틈에 끼여 고전할 위험성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인수합병을 통한 미래성장동력 확보에 적극적인 씨제이도 기존 물류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씨제이 쪽은 “아시아나는 여객 위주여서 화물시장 점유율이 대한항공에 뒤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이는 재벌들이 과거 인수합병 시장에 ‘대어’가 나오면 앞다퉈 뛰어들어 인수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것과 완연히 다른 모습이다. 기업은 성공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단번에 신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에스케이가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 대박’을 터뜨린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반대로 무리한 인수로 그룹 전체가 동반 부실에 빠지며 ‘승자의 저주’에 빠진 사례도 있다. 금호가 2006~2008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에 10조원 이상을 쏟아부었다가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게 대표적이다. 웅진도 2007년 이후 극동건설, 새한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기업 인수는 아니지만 현대차그룹이 2014년 한전 부지를 10조5500억원에 인수한 것은 지금까지도 논란거리다.

한화 고위 임원은 “과거 창업 세대나 2세 때는 확장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사업 성공 가능성, 가격 적정성 등이 중시된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지난해 심사한 기업결합 건수는 최근 10년간 최대 규모였지만 기업결합의 금액은 오히려 2017년보다 22조원이 줄었다”며 “기업들이 대형 인수합병과 관련해 과거처럼 단순한 외형 확장보다 핵심 경쟁력 확보와 사업구조 재편에 중점을 둔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재계에선 유력 인수후보들이 완전히 손을 뗐다고 단정 짓기 힘들다는 시각도 많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과열경쟁으로 아시아나의 몸값이 과도하게 치솟는 것을 막기 위한 ‘연막전술’일 수 있다”며 “실무자가 인수에 부정적 의견을 냈더라도 총수의 한마디면 180도 방침이 바뀌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화 고위 임원도 “인수설을 부인하는 그룹 중에서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 등 다크호스가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금호아시아나와 매각 주간사인 크레디트스위스증권은 최근 매각 일정과 방향을 논의하며 이르면 7월부터 인수의향서를 받기로 했다. 인수 후보들의 속내는 곧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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