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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십수년 누적된 ‘혁신 부재’가 한국 제조업 위기 불렀다

등록 2019-01-02 05:01수정 2019-01-02 11:55

[새해기획] 제조업 패러다임 바꿔야 산다
① 제조업 위기의 뿌리와 출구

자동차·조선 등 주력 제조업 2008년 이후 현저한 둔화세
생산·수출 증가율 쪼그라들고 제조업 가동률도 71% ‘풀썩’
저단가·물량 위주 전략 매몰 혁신 가로막는 생태계 굳어져
노동 생산성 강화 시급한 과제 R&D투자 대기업 편중 벗어야

자동차 산업을 비롯해 조선·철강·기계·석유화학·반도체·통신기기 등 우리나라 주력 제조업의 성장세 둔화는 최근에 나타난 돌출 현상이 아니다. 2000년대 이후 주력 제조업의 ‘진행 경로’에 이미 경고등이 들어왔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엔 ‘장기적이고 현저한’ 둔화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게 경제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 ‘제조업 강국’의 현실은

제조업의 추세적인 부진은 여러 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조업 전체 생산 증가율(연평균)은 2000~2010년 9.5%에서 2010~2017년에는 2.4%로 떨어졌고, 같은 기간 수출 증가율도 10.5%에서 2.8%로 낮아졌다. 생산과 수출 증가율 모두 10여년 만에 4분의 1 수준으로 후퇴한 것이다. 제조업 가동률 또한 2010년 이후 장기적인 하락 추세다. 설비투자 등 생산능력에 견줘 실제 공장이 얼마나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평균가동률은 2011년 1분기(81.3%)를 정점으로 2018년 1분기에는 71.0%까지 떨어졌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수준에 근접한 것이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전에는 생산 증가율이 생산능력 증가율을 대체로 상회했으나, 2010년 이후에는 이 관계가 역전됐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제조업의 역동성이 눈에 띄게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조업의 성장성을 보여주는 총부가가치증가율은 금융위기 전(2002~2008년) 평균 7.5%에서 2010~2016년엔 3.8%로 반토막이 났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 디지털·서비스 경제 확산 등의 영향으로 제조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건 일반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일본과 독일은 각각 0.8%포인트, 1.2%포인트 상승했고 미국의 하락폭은 0.5%포인트에 그쳤다. 다른 제조업 경쟁국과 비교하면 ‘나홀로 부진’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제조업 부진을 세계경제 성장 둔화나 중국의 추격 등 ‘외부 요인’ 탓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누적돼온 주력 제조업의 만성질환이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무엇이 위기를 불렀나

전문가들은 제조업 위기의 진원지로 제품·기술 혁신을 외면한 채 물량에 의존해온 수출 전략을 꼽는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제조 산업(85개) 중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생산비’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2016년 기준)은 30개로 전체 무역수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5.9%에 이른다. 반면 ‘기술’ 비교우위 산업은 17개(13.8%)에 그친다. 이미 중국 등에 추월당해 생산비 비교‘열위’가 된 산업은 2010년 17개에서 2016년 30개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석유화학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시장 붐이 한창일 때 국내 기업들이 (마진이 적은) ‘빨간 고무대야’ 생산라인까지 경쟁적으로 확장했다”며 “지금도 물량 위주 경영 전략이 국내 제조업의 만성적이고 지배적인 체제”라고 말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본부장은 “디지털 전환과 서비스 융합 등으로 제조 상품의 가치사슬 구조가 급속히 변화하면서 경쟁력의 원천이 바뀌고 있다. 전후방 생태계와 연계해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으로 산업 재편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가격 대비 품질’이라는 산업화 초기 전략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물량 위주 전략은 ‘혁신을 가로막는 생태계’의 고착화로 이어진다. 한국은행의 한 간부는 “대기업 협력업체들이 지금까지는 쥐어짜는 단가를 납품 물량 증가로 상쇄하며 버텼지만, 이런 ‘물량 효과’가 멈추면 고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가 착취’에 기반한 생태계는 업황 부진이 닥쳤을 때 위험을 위아래 양쪽으로 급속히 전이시킬 뿐 아니라, 제조업 내부의 제품·기술 혁신을 지체시키는 최대 장애물이 된다. 한 전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현대차나 삼성전자 임원들이 납품업체 단가를 줄인 공로로 해마다 더 많은 성과급을 받는 게 현실”이라며 “이런 생태계에선 첨단소재에서 정밀부품으로, 다시 핵심장비로 이어지는 협력업체의 창의적 혁신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말했다.

■ 어떻게 바꿔야 하나

무엇보다 노동 역량(생산성) 강화가 시급한 문제다. 제조업 노동 생산성을 보여주는 부가가치율(부가가치/총생산액) 하락은 국내 제조업이 ‘숙련노동의 축출’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조업 부가가치율은 외환위기 직전 30%에 달했으나 이후 경향적으로 낮아져 2016년엔 25.5%까지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하위 7번째다. 세계 시장에서 우리 제품과 다투는 미국(36.9%)·일본(34.5%)·독일(34.8%) 등에 비해 크게 낮다. “외환위기 이후 거의 모든 제조 산업·업종마다 현장 인력 투입을 대폭 줄여 사람 비용을 낮추고 대신에 자본 투입은 늘리는 ‘자동화 속도’ 경쟁 전략을 채택해왔다. 100원짜리 제품을 고부가가치 200원짜리로 높여 경쟁해야 하는데, 거꾸로 사람을 줄이고 저임금 비정규직을 늘려 가격을 90원짜리로 낮추는 전략에 몰입해왔다.”(정은미 본부장) 사람을 기계로 대체하는 자동화 투자에 치중해 제품·기술 혁신의 원천인 노동 역량은 오히려 퇴보하는 ‘탈숙련’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적 자원 배분 전략도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 연구개발(R&D) 명목으로 대기업에 편중 지원해온 방식에서 벗어나 ‘건강한 생태계 조성’에 자원을 동원해야 혁신 활력이 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 이후 한국 경제 성장에서 제조업의 기여율은 30%에 이른다. 운수·도소매 등 제조 관련 서비스업까지 합치면 66%에 이른다. 사실상 모든 산업에 전후방 효과가 가장 큰 제조업의 부진은 일자리와 소득의 어려움으로 전이될 수밖에 없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산업공학)는 “지금 우리 산업은 강물의 물줄기가 바뀌는 지점에 와 있다”며 “제조업 혁신에 관한 논의는 경제 전반, 나아가 국가 전체를 혁신하는 패러다임 대전환과 연결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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