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마련 중인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은 지난 50년간 지속된 제조업 정책의 대전환을 예고한다. 위원회 산하 태스크포스(TF·티에프)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초안)를 보면, 제조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현장 기술·품질력을 높여, 한국 제조업이 맞닥뜨린 ‘쇠퇴 국면’을 돌파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현재 대기업 대비 50% 수준인 지역·중소 제조기업의 임금 및 생산성을 2030년까지 70%, 2040년까지 9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 경로로 △제조 업종별 ‘산업 공유지식 생태계’ 구축 △임금보상 등 사회·경제적 제도 개편 △산업단지 인프라 전환 등을 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혁신적 포용성장’을 국정 기조로 내세우며 “혁신을 통한 제조업 르네상스”를 자주 언급한 것도 이 프로젝트를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진다. 티에프 단장인 조원희 정책기획위 위원(국민대 교수)은 “신산업은 기획재정부 내 혁신성장본부에서, 또 산업부는 업종군별로 혁신전략을 짜고, 우리 티에프는 전통 제조업 부흥을 위한 생산 및 투자 전략을 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제조업이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개념설계’ 역량과 ‘기술지식’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일터 혁신’이 급선무라는 게 티에프의 판단이다. 국내 제조업은 제품·업종에서 부가가치 사슬의 맨 위에 있는 창의적 개념설계 역량이 매우 취약하다. 개념설계 역량은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와 실패 경험으로 축적되는 것이어서, 모방·추격형 발전과정을 거친 국내 제조업의 아킬레스건과 같다. 보고서는 “유능한 노동력에 기반해 축적되는 경험지식은 모든 제조산업이 공유하는 자산이자 제조업 재생전략의 핵심”이라며 “외환위기 이후 개별 기업에 특화된 기술지식은 활발하게 축적됐지만 산업 전체가 공유하는 지식자산 축적에는 소극적이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기술지식 축적을 중시하고 촉진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제도 구축을 르네상스의 요체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각 분야에서 숙련 기능인이 존중받고 ‘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숙련직무 등급제’ 도입을 제안했다. 숙련 기능·기술 인력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평가보상 기준이 마련되면 정규직-비정규직 간 차별,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줄여 고질적인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65살이 넘어도 회사가 필요한 숙련 인재는 계속 승진하는 경력 트랙이 마련되면, 50대 조기 은퇴와 과잉 자영업자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짚었다.
국내 대기업들이 주로 1차 협력업체를 상대로 시행하는 품질·기술교육 사업 혜택을 2~4차 하청업체도 받을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을 체계화하는 방안도 담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제조업에서 ‘고성과 작업관행’(일터 혁신)이 이뤄지는 일자리는 전체 제조업 일자리의 14.9%(2016년)로 비교 대상 19개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가 꼴찌에서 두번째다. 독일(21.2%)·일본(22.3%)·미국(26.0%)은 물론 체코·스페인·아일랜드보다도 낮다. 고성과 작업관행이란 일터에서 작업의 유연성, 동료와의 협력·정보공유, 교육·훈련 등이 능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보고서는 “최저임금 인상 및 주 52시간제 시행의 후속·보완 조처 성격으로 일터 혁신에 나서면 중소기업 현장의 숙련 기술력과 주력 제조업의 경쟁력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청년층의 중소기업 기피를 부르는 임금·노동환경 조건을 크게 개선하는 정책도 추진된다. 전국의 산업단지를 공장·기계기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산업단지 재생’ 전략인데, 산업단지 안팎에 도서관, 스포츠·레저시설, 공공주거(기숙사·임대주택), 교육·생활 인프라를 동시에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산업정책에 도시재생을 결합하는 것으로, 지역과 중소 제조업체로의 취업 유인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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