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인사이드] 검찰 비리수사 파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조기 퇴직자 위해 기업에 ‘고문’ 자리 요구
삼성·현대차·엘지·롯데 등 10여개 기업 대상
기업 비관련 업무로 ‘세탁’…공직자법 회피 공정위 퇴직자가 기업에 들어간 첫 사례로는 김영삼 정부 말기 현대차에 들어간 이아무개 전 상임위원이 꼽힌다. 2005년에는 김병일 전 부위원장이 처음으로 로펌인 김앤장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퇴직자들의 기업행은 공정위와 상관없이 개인의 전문성이나 연줄을 통해 이뤄졌고, 숫자도 많지 않았다는 게 공통된 얘기다. 공정위의 퇴직자 재취업 비리가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은 이명박 정부 초기인 10여년 전이다. 검찰이 공정위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바람직한 조직문화를 위한 퇴직자 관리 방안’ 문건도 2009년에 작성됐다. 공정위의 한 퇴직자는 “공정위가 2000년대 후반부터 퇴직 예정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인사적체 심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공정위는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산업부 등 다른 경제부처와 달리 산하단체가 거의 없다”면서 “퇴직자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은 게 기업에 재취업을 부탁하게 된 큰 요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퇴직자의 대기업 재취업은 공정위와 기업의 유착 우려도 낳는다. 실제 2015년말 공정위가 한 백화점에 퇴직 예정자의 자리 마련을 요청했으나 난색을 보이자, 업무 연관성이 있는 유통거래과장이 백화점에 직접 압력을 넣어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유통거래과가 향후 해당 백화점의 불공정행위를 적발하더라도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검찰은 신세계그룹이 기업집단 공시와 지정자료 제출 때 이명희 회장의 차명주식을 숨긴 것에 대해 공정위가 2017년초 고발 없이 경고(과태료 포함)만 한 것과 관련해 퇴직자 재취업과의 연관 가능성을 수사 중이다. 공정위 한 간부는 “상시로 감사원 감사와, 국회 감시를 받고 있는데, 고발할 사안을 경고를 끝낸다는 것은 간이 배 밖으로 나오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공정위의 재취업 알선은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김상조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전면 중단됐다. 윤수현 공정위 대변인은 “재벌개혁, 갑질근절 못지않게 공정위 신뢰성 제고 등 내부 혁신을 핵심과제로 추진했다”면서 “공정위가 재취업에 개입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검찰수사 직전인 지난 3월 공정경쟁연합회 행사에서는 “퇴직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공정위 간부가 기업이나 로펌으로 재취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공개 천명했다. 김 위원장은 공정위가 감독하는 다단계판매 및 상조회사 관련 공제조합의 이사장 인사에도 일체 간여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2000년대 후반 인사적체 심화 결정적 계기
산하단체 없어 퇴직자 갈 곳 없는 것도 요인
김상조 취임 이후 전면금지…공직윤리 강화
공정위 “과거 일로 김상조 개혁 차질 안돼”
김 위원장 “검찰조사 이후 추가 쇄신 발표” 김 위원장 취임 이후 퇴직자가 공정위를 통해 기업에 재취업한 사례는 한건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포스코·신세계·하이트 등은 공정위 출신 고문이 지난해 이후 임기가 끝났으나, 후임자가 없어 공석 상태다. 10대그룹 임원은 “기업으로서는 공정위 출신이 조사계획 등에 대한 사전 동향 파악, 사건 발생시 공정위와의 커뮤니케이션 등을 위해 현실적으로 필요한 측면도 있다”면서 “공정위 출신의 임기가 끝나면 관행적으로 공정위에 후임자 추천을 요청해왔으나, 김 위원장의 중단 지시가 내려진 뒤에는 요청을 못했다” 털어놨다. 지난 5월 공정위 서울사무소의 이아무개 서기관이 사표를 내고 에스케이하이닉스 고문으로 옮긴 것은 공정위와 전혀 무관하게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손경배 홍보팀장은 “공정거래법 준수 관련 컨설팅을 해줄 적임자를 공정위 출신 중에서 물색해왔다”면서 “이아무개 고문은 회사의 자체 판단에 따라 개별 접촉을 해서 영입했다”고 밝혔다. 김상조 위원장이 취임 이후 추진한 공정위 신뢰제고 방안에는 직무 관련자 사적접촉 금지 및 부득이한 접촉시 서면보고 의무화, 사건 관련 공식 의견청취 절차 외에 개별면담 원칙 금지 및 부득이한 경우 녹음·기록 의무화, 조사부서 5~7급 직원도 재취업 심사 등의 공직윤리 강화 방안이 포함됐다. 또 심의 속기록 누리집 공개, 신고인에 사건진행 상황 제공 등과 같은 조사절차의 투명성 제고와, 사건처리 실시간 관리시스템 구축과 같은 내부통제시스템 강화 방안도 시행됐다. 김 위원장이 재취업 알선을 전면 중단시키면서 퇴직을 앞둔 고참 간부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또 사적접촉 금지에 대해서도 불편하다는 원성도 들려왔다. 공정위 한 간부는 “지난해 내부 쇄신작업이 없었다면 지금 어땠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면서 “공정위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처벌받고 재발방지책 강화 노력은 당연하지만, 과거정부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김상조 위원장이 주도해온 문재인 정부의 갑질근절, 재벌개혁이 차질을 빚어서는 안된다”고 안타까워했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다 강도 높은 자성과 쇄신을 통해 ‘시장경제의 파수꾼’으로서 국민신뢰를 다시 회복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김상조 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검찰수사가 발표되면 추가적인 내부 혁신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대형로펌과 대기업의 공정위 관련 업무 담당자와 공정위 출신자를 대상으로 한 사전등록제 재추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한국판 ‘로비스트 등록제’로 불린 이 제도는 대형로펌과 공정위 퇴직자들의 강한 반발에 부닥쳐 유보됐으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더이상 시행을 늦출 명분을 찾기 어려워졌다. 또 현재 내부 훈령으로 되어 있는 직무 관련자 사적접촉 금지 및 부득이한 접촉시 서면보고 의무화 규정도 법이나 시행령으로 명문화할 필요도 제기된다. 퇴직을 앞둔 고참 간부들에 대한 체계적 관리 필요성도 제기된다. 공정위 한 간부는 “퇴직을 멀지 않은 중간간부들은 재취업이 막힌 뒤에는 한직으로 밀려나 사실상 눈치밥을 먹고 있다”면서 “경력이 30년 이상인 전문가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것은 당사자는 물론 정부로서도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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