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신현호의 차트 읽어주는 남자
⑬ 담뱃세 효과
2015년 1월1일 담뱃세가 대폭 인상되면서 담배가격이 갑당 2500원에서 4500원으로 80%나 올랐습니다. 2004년 담뱃세가 인상된 이후 십년 만의 인상인데다, 역사상 가장 큰 폭으로 오른 것이라 수많은 논란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꼼수 증세’이자 ‘서민 증세’라고 공격하면서 반발했습니다. 흥미롭게도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담뱃세 인상을 추진했을 때,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소주와 담배는 서민이 애용하는 것 아닌가, 국민들이 절망하고 있다”며 담뱃값 인상을 반대한 적이 있습니다. 여야의 처지에 따라 입장이 달라진 것이죠.
또 지난 대선에서 담뱃세는 주요 후보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2017년 저서에서 “담뱃값을 이렇게 한꺼번에 인상한 건 서민경제로 보면 있을 수 없는 굉장한 횡포로 (…) 담뱃값은 물론이거니와 서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간접세는 내리고 직접세를 적절하게 올려야 합니다”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 이후 공약집에서는 이 대목이 빠졌지만 대체로 문재인 후보가 담뱃세 인하에 원칙적인 찬성 입장을 밝힌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훨씬 더 강한 입장으로 “서민들이 애용하는 담배 가격을 올리는 것은 금연정책이라기보다 서민 호주머니 털기가 아닌가 생각된다”며 담뱃세 인하 공약을 발표하였습니다.
담배나 술과 같이 바람직하지 않거나 유해한 소비재에 부과되는 세금을 통상 ‘죄악세’(sin tax)라고 부르는데요. 저는 이 표현이 다소 과하다고 생각하고 ‘교정과세’나 ‘소비억제세’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취지는 마찬가지입니다 유해 물품의 소비를 줄이자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의 주제는 담뱃세의 효과입니다.
담뱃세 인상의 긍정적 효과
담뱃세 인상의 긍정적 효과는 분명합니다.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담배 제조회사도 인정할 정도로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국제사회에서 흡연을 줄이려는 엄청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틀은 세계보건기구의 ‘담배규제 기본협약’(FCTC)입니다. 2005년 2월 발효돼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참여한 국제조약으로 우리나라 역시 2005년 6월 비준했습니다. 심지어 북한조차도 비준한 조약이죠. 이 협약은 담배가격 및 조세정책이 담배 소비를 줄이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각국 정부는 담배 소비를 줄이기 위해 세금을 부과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여행객에게 면세 담배를 파는 것조차 제한하거나 철폐하여야 한다고 제안할 정도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국내 정치권의 논쟁과는 별개로 국제 보건학계에서는 한국의 담뱃세 인상을 주목하였고, 담배 관련 의학 학술지에서 사설로 다루기까지 했습니다.
(‘한국의 2015년 담뱃세 인상’, <토바코 컨트롤>, 2016) 사설은
그림 1에서 보듯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담배가격이 매우 낮고 동시에 흡연율이 매우 높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한국의 담뱃세 인상이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사실 한국의 담배가격은 오이시디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낮은 편이었습니다. 세계보건기구 통계에 따르면, 나라별로 가장 많이 팔린 담배 가격을 국제적으로 비교한 결과,
그림 2에서 보듯 한국은 2015년 담배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 뒤에도 선진국 평균에 비해 크게 낮고 세계 평균과 비슷한 수준 정도입니다. 만약 담배가격이 인상되지 않았다면, 한국의 담배가격은 국제적으로 저소득 국가의 평균 가격과 유사했을 것입니다.
이제 담배가격과 흡연율 사이의 관계를 살펴볼까요. 국내 담배 판매량은 2014년 44억갑에서 담뱃값이 인상된 2015년 33억갑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이후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37억갑, 35억갑이 팔려서 소비 하락 효과가 일정 정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흡연율도 하락 효과가 발생했습니다. 2014~2016년 성인 남성 흡연율은 24.2%에서 22.6%로 하락한 후 23.9%로 일부 반전하였습니다. 청소년기 남학생의 경우는 이 기간에 9.2%, 7.8%, 6.3%로 하락 효과가 뚜렷했습니다. 더 분명한 효과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축적과 연구 심화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국제적으로 보면 담배가격이 흡연율 및 소비량을 낮춘다는 연구가 압도적입니다. 그중 대표적인 프랑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토론토대학의 프라밧 자 교수와 옥스퍼드대학의 리처드 피토 교수에 의하면, 미국과 영국이 성인 1인당 담배 소비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데 30년이 넘게 걸린 데 반해, 프랑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90년부터 2005년 사이의 15년 동안 매년 담뱃세율을 5% 이상 올려서 실질 담배가격이 이 기간에 무려 세 배로 올랐고, 담배 소비량은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흡연, 금연, 담뱃세의 효과’,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 2014).
그림 3에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담뱃세 인상에 대한 우려
담뱃세 인상에 대한 우려도 살펴볼까요.
2015년 당시 담뱃세 인상에 부정적이었던 분들의 주장 중 하나는 이것이 꼼수 증세로서, 국민 건강 증진이 아니라 정부 세수 증대가 목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논란은 세수 증대에 대한 예상이 기관별로 들쭉날쭉해서 발생하기도 했지만, 정부 쪽 보고서에 정부가 금연 효과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세수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서 담뱃세를 맞추었다고 의심할 만한 대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담뱃세율이 높을수록 계속 추가 세수가 커질 것 같지만, 세율이 매우 높아져서 판매량 하락 효과가 지나치게 커지면 오히려 추가 세수가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조세재정연구원이 기획재정부 용역으로 작성한 보고서에,
그림 4와 같이 담배가격이 (정부가 올린다는 가격인) 4500원이 될 때까지는 세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다가, 그 가격을 넘어서면 판매량 감소 효과가 커서 오히려 세수가 줄어든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들끓는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습니다.
(‘담배 과세의 효과와 재정’ 조제재정연구원, 2014)
정부가 국민 건강 증진이 아니라 세수 극대화를 목표로 했다면 괘씸한 일이지만, 세수 자체가 늘어나는 것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프랑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담뱃세 인상으로 세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났는데, 이것 역시 긍정적인 효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늘어난 담뱃세를 건강보험 지원이나 금연 교육 확대 등 필요한 곳에 사용한다면 이중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조세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재정지출의 영역이고 사회적으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담뱃세 인상에 대해 사람들이 더 심각하게 우려했던 것은 형평성 문제였습니다. 소득별로 네 그룹으로 나누어 2015년의 한국의 흡연율을 보면, 최상위 그룹 18.5%, 두번째 그룹 21.6%, 세번째 그룹 22.2%, 최하위 그룹 23.8%였습니다. 이렇듯 저소득층으로 갈수록 흡연율이 더 높기 때문에 담뱃세 인상의 부담을 저소득층이 더 많이 지게 된다는 주장은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글머리에 말씀드린 대로 여러 정치인들이 경고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소득층에 미친 영향
이에 대해서 조세재정연구원의 최성은 박사가 흥미로운 분석을 수행하였습니다.
(‘2015년 한국 담뱃세 인상이 저소득층에 미친 효과’, <저널 오브 어딕션 리서치 앤 세러피>, 2017) 최 박사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담배 가격 인상에 따른 흡연율 저하 효과는 소득이 낮을수록 크다고 합니다. 실제 한국에서도 2015년 담배가격 인상 후 최하위 계층 흡연율은 전년 대비 12% 하락하였지만, 최상위 계층은 고작 3% 떨어졌다고 합니다. 추가적인 조세부담은 오히려 고소득층이 더 많이 부담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흡연은 긴 노동시간과 낮은 소득에 지친 서민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인 측면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주목하면 담뱃세가 인상되어 저소득층의 담배 소비가 줄어드는 것을 ‘서민들이 애용하는’ 기호식품이 박탈되는 것으로 볼 것입니다. 하지만 또 그만큼 저소득층의 건강이 개선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 않을까요?
담뱃세 인상에 따른 여러 효과들의 종합적 판단은 결국 독자이자 유권자인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 글이 여러분 판단에 작은 참고자료로 쓰이길 바라면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