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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프로야구, 로봇 심판이 필요할까요?

등록 2018-04-08 09:28수정 2018-04-08 13:24

[토요판] 신현호의 차트 읽어주는 남자
⑩ 야구의 통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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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 프로야구는 2년 연속 총관객 800만명을 넘겼고, 이 숫자는 프로축구와 프로농구, 프로배구 관객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습니다. 가히 국민 스포츠라고 할 만하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프로야구에선 판정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주심의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두고 논란이 자주 벌어지는데요. 지난 2월 국내 야구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스포츠조선>이 실시한 조사에서도 ‘스트라이크존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한국 프로야구의 가장 시급한 개선사항 1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야구는 모든 행동과 성과를 세밀하게 나누어 기록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세부 데이터를 정리하고 분석하기에 매우 적합한 운동 종목입니다. 야구의 통계 정리는 무려 170년 전에 시작됐고, 1971년 미국야구연구협회(SABR) 창립 이후부턴 ‘계량야구분석’(sabermetrics)이 붐을 이루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저예산에 시달리던 미국 프로야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빌리 빈 단장은 계량분석에 기초한 구단 운영을 통해 연봉이 매우 낮은 선수들로 이뤄진 팀을 연속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 것은 물론, 아메리칸 리그 최초의 20연승을 달성하는 등 맹활약을 한 바 있는데요. 이 이야기는 브래드 핏 주연의 영화 <머니볼>로도 만들어져, 일반인들에게도 계량야구분석의 위력을 널리 알린 바 있습니다.

심판의 판정은 인간의 행동인지라 당연히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야구 분석가들은 심판의 오류가 우연히 발생하는 단순 실수인지, 아니면 어떤 체계적인 경향을 발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텍사스대학의 경제학자 대니얼 해머메시 팀은 2004~2008년의 메이저리그 투구 350만건 이상을 분석해 스트라이크 판정과 인종차별 사이의 관계를 연구했습니다.(‘스리 스트라이크: 차별, 인센티브, 평가’,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 2011)

‘같은 인종’ 투수에게 유리한 판정 경향

분석 대상이 된 이 시기가 흥미로운 건 최초의 투구 추적 시스템인 퀘스텍(QuesTec)이 2001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했고, 2008년엔 이보다 더 정교한 피치에프엑스(PITCHf/x) 시스템으로 대체됐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정확한 투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심판 판정의 정확도를 검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해머메시 팀은 피치에프엑스 데이터와 심판 및 투수의 인종 자료를 결합해 분석을 진행했고, 심판이 자신과 같은 인종의 투수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반면, 투수들은 다른 인종의 심판을 만났을 때 불리한 판정을 예상하고,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로 공을 던지려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당시 메이저리그 심판의 90% 정도가 백인이었으므로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아인 투수들은 상당히 불리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추적 시스템이 설치된 구장과 그렇지 않은 구장을 비교해 보니, 놀랍게도 시스템을 갖춘 구장에서는 인종차별적 판정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플로리다대학의 스포츠경제학자 브라이언 밀스 교수의 계산에 의하면, 스트라이크를 볼로 오심하는 비율은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2008년엔 21.3%였으나 2014년엔 13%로 축소됐고, 볼을 스트라이크로 오심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12%에서 10%로 낮아졌습니다.(‘모니터링과 평가의 기술 혁신: 메이저리그 심판에 미치는 영향의 증거’, <레이버 이코노믹스>, 2017) 대부분의 야구인들은 심판의 판정에 대한 체계적 모니터링과 평가로 인해 심판의 인종차별적 판정이 거의 사라진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인종차별 이외에도, 심판의 다양한 심리적 편향과 관련된 연구가 잇달아 진행됐습니다. 그중 첫째는 이른바 ‘마태 효과’(Matthew effect)입니다. 사회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사회적 지위가 높은 개인을 실제 능력보다 더 능력이 있다고 평가하는 편향’을 마태 효과라는 개념으로 파악해 왔는데요. 김원용 교수(컬럼비아대학)와 브레이든 킹 교수(노스웨스턴대학)가 이 주제에 도전했습니다.(‘스타와의 대면: 메이저리그 판정에 있어서의 마태 효과와 지위 편향’, <매니지먼트 사이언스>, 2014)

두 사람은 올스타전에 선발된 투수는 명성이 높다는 사실에 착안해 올스타전 경험을 사회적 지위로 파악하는 접근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2008~2009년의 메이저리그 피치에프엑스 데이터를 이용해 사회적 지위가 높은 투수에게 유리하도록 판정이 이루어졌는지 살펴봤습니다. <그림1-A>는 투수가 실제 스트라이크를 던졌는데도 볼로 판정받은 피해를 본 비율입니다. 경계선 안쪽 10㎝ 이내의 꽉 찬 스트라이크의 경우, 올스타전에 참여한 적이 없는(‘사회적 지위가 낮은’) 투수가 피해를 본 비율은 57.3%였지만 올스타전에 한번 참여한 경험이 있는(‘사회적 지위가 높은’) 투수는 55.9%, 올스타전에 다섯번 참여한 경험이 있는(‘사회적 지위가 매우 높은’) 투수는 47.7%로 명성에 따라 피해 정도가 줄었습니다. 이러한 오심 비율은 당연히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로 들어올수록 낮아졌고, 덩달아 올스타전 참여 여부가 미치는 효과도 사라졌습니다. 이와 반대로 <그림1-B> 투수가 실제론 볼을 던졌으나 스트라이크로 판정받은 특혜 비율을 나타냅니다. 이번엔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혜택이 크지만, 마찬가지로 스트라이크존을 크게 벗어난 경우엔 특혜가 거의 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록 정리·분석에 적합한 야구 종목
일찍부터 ‘계량야구분석’ 기법 발전
‘인종차별적’ 판정 성향 확인되나
추적 시스템 갖춘 뒤엔 줄어들어

심리적 편향도 심판 판정에 영향 줘
‘사회적 지위’ 높으면 유리한 결과
국내 리그, 시스템 있어도 공개 안 해
‘데이터 야구 시대’ 발전에 걸림돌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예로는, 예전에도 잠시 소개한 ‘도박사의 오류’ 편향입니다. 동전을 던지는 경우처럼 무작위로 반복되는 사건 결과를 예측할 때, 사람들은 앞서 나온 것과 다른 결과가 나오리라고 예측하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툴루즈경제대학의 다니엘 첸 교수 등은 프로야구 심판도 이런 편향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2008~2012년 메이저리그 피치에프엑스 자료를 분석했습니다.(‘도박사의 오류에 영향을 받은 의사결정’, <계간 저널 오브 이코노믹스>, 2016)<그림2>에서 보듯이, 심판은 직전 투구를 스트라이크로 판정했을 경우, 다음 공이 실제 스트라이크이더라도 스트라이크로 판정하는 빈도를 줄였습니다. 두 번 연속 스트라이크 판정을 한 뒤엔 스트라이크 판정을 더 줄였습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경계선상에서 효과가 뚜렷했고, 한가운데 투구의 경우엔 효과가 미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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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스트라이크’에선 스트라이크 판정 줄어

마지막으로, 심판의 ‘영향 회피’(impact aversion) 편향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많은 야구팬들은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는 심판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가급적 내리지 않아야 하고, 반대로 스리 볼 상황에서는 볼 판정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심판이 최대한 정확하게 판정해야 한다는 원칙과 다소 어긋나는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심판의 판정에 의해 스트라이크 아웃이 되거나, 또는 베이스 온 볼로 진루하는 것보다는 선수들의 직접 행동에 의해 경기 진행이 이뤄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펜실베이니아대학과 스탠퍼드대학의 경제학자 에탄 그린과 데이비드 대니얼스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경기의 관리자로서 심판의 역할은 소극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심판들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스트라이크 판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가’, <MIT 스포츠분석 8차 학술대회 발표문>, 2014)

먼저 <그림3-A>부터 보시죠. 스트라이크존이 가로세로 방향의 붉은색 선으로 표시돼 있고, 투구가 스트라이크존 내부 또는 외부의 각 지점을 통과할 때 스트라이크로 판정받는 비율을 세번째 축의 높이로 표시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한가운데로 들어온 투구는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확률이 1에 가깝고 한가운데서 멀어질수록 확률이 낮아져 스트라이크존을 멀리 벗어나면 확률이 거의 0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3-B> 스리 볼인 상황에서의 투구와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투구가 각각 스트라이크로 판정받을 확률의 차이를 지점별로 표시한 것입니다. 스리 볼인 상황에서 스트라이크 판정이 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이 차이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양(+)의 값을 갖고, 특히 경계선 근방에서 이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심판이 아무리 영향 회피 성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 투구 혹은 완전히 벗어난 투구를 판정할 때는 영향을 덜 받는다는 뜻이죠. <그림3-C> 반대로 투 스트라이크 상황을 가정한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확률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낮기 때문에 두 값의 차이가 대부분의 영역에서 음수(-)이고, 이 음수값 역시 경계 근방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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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야구 심판이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내릴 때,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상당한 오류를 저지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야구팬 중 일부는 이러한 오류를 근원적으로 없애기 위해선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인간’ 심판에게 맡기지 말고 첨단 전자장비로 무장한 로봇에게 넘기자는 제안도 내놓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동의하시나요?

국내 구장에 등장한 최첨단 추적시스템

스포츠에서 공정함이란 매우 중요하므로 오심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특히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의 고참 심판 한 명이 여러 구단으로부터 상습적으로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야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판정을 유리하게 만들려는 의도에서 구단이 뇌물을 제공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만에 하나 스트라이크 판정이 뇌물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한 국내 프로야구가 치명타를 맞을 게 분명합니다. 또 미국에서 일부 확인됐던 것처럼 인종 등 차별에 의해 판정이 흔들리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차별은 미국에서도 매우 약화됐고 한국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심판의 여러 심리적 요인들입니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로봇 심판으로 대체하자고 주장할지, 아니면 인간 활동의 불가피한 측면으로 이해하고 넘길지,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오히려 제가 바라는 것은 상세한 정보를 측정하고 대중에게 공개하는 일입니다. 미국 사례에서 보듯이, 이러한 공개만으로도 심판 판정의 정확도가 뚜렷하게 높아집니다. 게다가 야구의 계량적 분석은 또 다른 흥미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지난해부터 피치에프엑스보다 정확도가 훨씬 높다고 알려진 트랙맨 시스템을 구축했고, 상세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미국과 동일한 수준의 정밀 시스템을 각 구장에 설치하고 있는데요. 다음달 고척 구장에 장착이 완료되면 모든 구장이 최첨단 추적 시스템을 갖추게 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데이터는 일반에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마침 올해부터 통계학에 조예가 깊은 경제학자 출신인 정운찬 총재가 한국야구위원회(KBO)를 이끌고 있죠. 모쪼록 한국에서도 ‘데이터와 함께하는 야구 시대’가 활짝 열리기를 희망하면서 오늘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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