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신현호의 차트 읽어주는 남자
⑨ 부작위 편향(omission bias)
백신 접종 바람직함에도 기피 경향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의
결과에 상이한 책임감 느끼기 때문
‘부작위 편향’의 대표적인 사례 꼽혀
열차 들어오는 선로 레버를 당겨
다섯명 살릴 것이냐의 가상 실험
도덕의 문제 관련된 ‘트롤리 딜레마’
한명 희생하는 죄책감 크기에 달려
⑨ 부작위 편향(omission bias)
백신 접종 바람직함에도 기피 경향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의
결과에 상이한 책임감 느끼기 때문
‘부작위 편향’의 대표적인 사례 꼽혀
열차 들어오는 선로 레버를 당겨
다섯명 살릴 것이냐의 가상 실험
도덕의 문제 관련된 ‘트롤리 딜레마’
한명 희생하는 죄책감 크기에 달려
천연두는 오랜 시간 동안 인류에게 가해진 가장 무서운 위협 중 하나였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도 천연두가 발견됐고, 우리나라에서도 처용가 등 삼국시대 기록에 천연두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하니, 무려 3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 천연두는 긴 시간 동안 인류 역사에 지속적으로 창궐하면서 18세기 유럽에서는 해마다 4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남미의 아즈텍문명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토록 무섭던 천연두가 1970년대에 이르러 근절됐는데, 이는 1798년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발견한 천연두 백신의 보급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후 백신은 천연두 이외에도 홍역, 결핵, 수두 등 다양한 질병 예방에 중요한 기여를 해오고 있습니다.
이런 빛나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최근 백신 거부 움직임이 강해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라는 단체가 예방접종 거부 운동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백신 거부 현상에 대해 논의를 하다 보면, ‘과학적 지식이 덜 보급된 낙후된 국가에서나 발생하는 것으로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이디 라슨 교수 등 영국·프랑스·싱가포르의 보건학자들이 67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백신에 대한 태도는 교육 및 경제발전 수준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습니다.(▶‘백신에 대한 믿음’, , 2016) ‘백신은 전반적으로 안전하다’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비율을 살펴보면, 프랑스가 41%로 가장 높았고, 보스니아와 러시아가 그 뒤를 이었으며, 일본도 25.1%로 7위에 올라 있습니다. 반면 방글라데시가 0.2%로 가장 낮았고,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 필리핀 등도 1%대의 매우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은 9%로 세계 평균(12.5%)보다 낮은 편이었습니다.(<그림1>)
“가장 큰 비용은 무행동의 오류다”
백신 기피 현상을 연구하던 보건학자들은 백신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왜곡된 정보 이외에 심리적 요인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다음과 같은 가상의 상황을 한번 보실까요.
‘매우 위험한 인플루엔자가 창궐했고, 특히 3살 이하의 어린이에게 치명적인데, 이 아이들 중 10%가 감염되고, 감염된 아이들 중 1%가 이 병으로 사망한다. 요약하면 아이들 1만명당 10명이 사망하게 되는 것인데, 새로운 백신이 개발되어 이 백신을 접종하면 아이들은 전혀 감염되지 않는다. 다만 백신의 부작용으로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 당신에게 이 나이 때의 아이가 있다고 치자.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은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조너선 배런과 일라나 리토브가 미국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입니다.(▶‘백신 기피: 부작위 편향과 모호성’, <행동의사결정 저널>(Journal of Behavioral Decision Making), 1990). 만약 부작용으로 인해 죽을 확률이 1만분의 10 이상이라면 접종을 피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1만분의 10보다 낮다면 아이가 목숨을 구할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지니 접종을 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 아닐까요? 하지만 이 실험에 참여한 개인들의 백신 접종·비접종을 가르는 부작용 가능성의 평균값은 대략 1만분의 5 정도였습니다. 이후 수많은 후속 연구가 이어졌는데요. 조사 대상을 부모로 하거나, 부작용으로 죽을 수 있는 아이가 해당 질환에 취약한 아이로 한정한다든가, 백신 비용을 여러 가지로 설정한다든가 하는 변화를 주었지만, 대체로 연구 결과는 일관되게 나타났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commission)과 선택하지 않은 것(omission)에서 발생하는 결과에 대해 상이한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부모는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을 때 아이가 병에 걸려 사망하게 될 경우 느끼는 책임감보다, 백신에 접종했는데 아이가 부작용으로 사망하게 되었을 경우 느끼는 책임감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죠. 그래서 백신 접종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백신을 접종하는 행위를 피하는 경향이 있고 이것을 ‘부작위 편향’(omission bias. 무행동 편향)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최근 기업들 사이에선 이러한 부작위 편향에 대한 경계가 커지고 있는데, 아마존 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의 다음 경구가 이를 잘 웅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행동의 오류(errors of commission)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기업은 실패의 비용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하지만 실패는 비싼 게 아니다. 기업에 있어서 가장 큰 비용은 알아차리기 힘든데, 그것은 무행동의 오류(errors of omission)이다.” 그 외에도 여러 기업이 부작위 편향을 직접 언급하면서 이를 극복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트롤리 딜레마와 육교 딜레마
부작위 편향과 관련된 도덕철학의 문제로 ‘트롤리 딜레마’라는 것이 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철학자 필리파 풋이 1967년 제기한 다음 문제를 같이 생각해볼까요?
‘다섯명이 서 있는 선로에 열차가 들어오고 있고 그대로 두면 이 다섯명은 열차에 치여 죽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선로를 바꿀 수 있는 레버 앞에 서 있다. 당신이 레버를 당겨 열차의 방향을 바꾸면 이 다섯명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바뀐 선로에도 한명이 있어서 이 경우 그 사람이 죽게 된다. 당신은 레버를 당길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둘 것인가?’
만일 공리주의적 관점으로 목숨의 가치를 계산해서 행동한다면, 당연히 레버를 돌려 다섯명을 구하고 한명을 희생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도덕적 명령에 따른다면,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다섯명의 죽음을 초래하는 것의 죄책감보다, 내가 레버를 당김으로써 한명을 죽게 하는 것의 죄책감이 더 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에 대해 여러차례 설문조사가 있었는데요. 대부분의 응답자는 레버를 당기는 행동을 선택했습니다.
한편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철학자 주디스 톰슨은 1985년 트롤리 딜레마를 변형해서 ‘육교 딜레마’라는 것을 제시했습니다. 이것은 트롤리 딜레마와 유사하지만 열차를 멈추는 방법이 다릅니다. 지금 당신이 육교 위에 서 있고, 당신 앞에 체구가 큰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이 사람을 열차 앞에 밀어 떨어뜨리면 열차는 멈추고 다섯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을 밀어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열차가 지나가도록 해야 할까요?
이것은 당신의 행동으로 다섯명의 생명을 구하고, 그 부작용으로 한명이 희생당한다는 점에서 트롤리 딜레마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달랐습니다. <그림2>에 여러 조사 결과를 정리했습니다. 그림을 보면 사람들은 다섯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레버를 당겨서 한명이 희생되는 것을 대체로 감수했지만, 한명을 육교에서 밀어 다섯명을 구하는 행동은 매우 주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과연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조슈아 그린 교수는 실험을 통해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하였습니다.(‘감정이 도덕적 판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자기영상장치(fMRI)를 이용한 조사’, <사이언스>, 2001)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가지 유형의 선택을 하도록 했습니다. 첫째는 육교 딜레마와 같이 도덕적 선택 중 개인적 측면이 강한 이슈였고, 둘째는 트롤리 딜레마처럼 도덕적 선택이지만 익명성이 강한 이슈였고, 끝으로 윤리적 측면이 없는 이슈들이었습니다. 예컨대 버스를 타느냐 지하철을 타느냐 같은 것들이죠. 그리고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선택을 하는 동안 자기영상장치를 이용해 뇌의 부위별 반응을 촬영했습니다.
그 결과가 <그림3>에 정리돼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부위별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에 비추어 분석해 보니 도덕적인 판단을 할 때, 개인적인 측면이 강할 경우는 익명적 측면이 강한 경우에 비해 각회 등 뇌의 감정을 처리하는 네개의 영역들이 더 크게 반응했습니다. 반대로 두정엽 등 인지 처리와 관련된 세개의 영역들은 반응이 더 낮았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설령 행위의 결과가 동일(다섯명의 생명을 구하고, 한명을 희생시키는 것)하다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더라도, 사람을 미는 것과 레버를 당기는 것은 감정적으로 다르게 느끼기 때문에 선택이 달라진다는 뜻이죠.
성취지향형 사회와 안정지향형 사회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논의는 흥미롭긴 하지만 중요한 단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가상의 상황을 설명한 뒤, 백신을 접종할 것인가? 레버를 돌릴 것인가? 사람을 육교에서 밀 것인가에 대해 역시 가상적으로 선택해서 답하는 형식이었는데요. 과연 이것이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던 거죠. 최근 여러 연구들은 한층 발전된 정보통신(IT) 기술을 토대로 3D 가상현실을 동원해 레버를 실제로 당기거나 사람을 육교에서 미는 행동을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기존 연구의 결과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딜레마에 직면한 사람들마다 나타나는 행동이 다르므로, 그 차이를 규명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컬럼비아 대학의 토리 히긴스 교수는 조절초점 이론을 통해 인간을 이상적 자아를 중시하는 성취지향형과 당위적 자아를 중시하는 안정지향형으로 구분한 바 있는데요. 한국의 심리학자 정은경(강원대)·김수정(텍사스대)·손용우(연세대)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안정지향성이 강할수록 부작위 편향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도덕적 판단에 있어서 무행동 편향과 조절초점’, <아시안 저널 오브 소셜 사이콜로지>, 2014)
참고로 히긴스 교수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은 인구의 65~70%가 성취지향인 반면, 동아시아 국가는 65% 정도가 안정지향형이라고 한 것에 비추어 보면, 공직 사회에 만연한 복지부동 역시 행동의 실패에 지나치게 가혹한 우리 사회의 강한 부작위 편향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요? 모두가 주저할 때 적극적으로 운전대를 잡으려고 나서는 공직자에 대해서 ‘튀는 행동’이라고 이마를 찌푸릴 것이 아니라, 심리적 장벽을 이기고 나선 행동으로 격려해주고 그 과정의 실수에 대해서도 조금 더 관용해주는 분위기가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에 있어서도 무행동의 비용이 행동의 비용보다 훨씬 더 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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