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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흔들리는 중년’, 어느 나라나 공통된 현상인가요?

등록 2018-02-25 09:35수정 2018-02-25 16:02

[토요판] 신현호의 차트 읽어주는 남자
⑦ 중년의 위기

나이가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대체로 ‘U자 형태’ 띠는 경향 보여
한국은 나이 들수록 지속적 하락 추세
‘연령-행복도’의 U자 곡선 미약한 편

침팬지·오랑우탄도 ‘중년’ 만족도 낮아
중년의 위기는 생물학적 특성 탓?
결혼 여부도 행복수준에 중요 변수
기혼-미혼 격차, 중년기에 가장 커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전통적으로 개인의 행복을 직접 분석하기보다는 소득이나 재산을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해왔습니다. 행복은 관찰하기도 측정하기도 어렵다는 이유에서였죠. 하지만 1970년대에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부유한 나라가 반드시 더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이스털린 역설’을 발표했습니다. 세간에는 소득 수준이 매우 낮은 부탄 국민들의 행복수준이 매우 높은 것으로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이후 경제적 측면을 넘어서는 행복 자체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경제학자들도 ‘삶의 만족도’나 ‘행복감’ 등을 조사하고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인지 본격적인 분석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엔은 세계 각국의 행복도 조사를 통해 2011년부터 ‘더 나은 삶 지수’와 ‘세계 행복 리포트’를 해마다 발간하고 있습니다.

중년에 찾아오는 행복감의 상실

행복에 관한 여러 연구 중에서 특별히 많은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나이와 행복의 관계였습니다. 연령별 행복도에 대한 연구가 많이 축적된 영국의 사례를 먼저 살펴보시죠. 영국 통계청은 매년 전국 표본조사를 통해 웰빙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연령·성·교육수준·지역 등 각종 개인적 특성을 나타내는 항목과 함께, ‘요즈음 전반적으로 당신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시나요’라는 질문에 0점에서 10점 사이의 값으로 답변을 하게 됩니다. 미국 다트머스대학과 영국 워릭대학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와 앤드루 오즈월드가 2011~2015년간 총 41만6천명을 대상으로 한 이 자료를 분석한 결과가 (그림1-A)에 정리돼 있습니다.(▶‘인간은 중년에 심리적으로 바닥에 이르는가’, NBER 보고서, 2017)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 예컨대 가족관계나 교육수준 등이 연령대별로 다르므로 과연 행복수준의 차이가 연령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연령을 통해 드러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러한 효과를 ‘제거’하고 나이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봤습니다. 비교적 ‘U자’ 형태가 뚜렷한 편입니다.

영국의 경우, 삶의 만족도가 가장 낮은 중년기와 만족도가 높은 청년기 및 노년기의 차이는 대략 1포인트(10점 척도 기준)쯤인데요, 과연 이것은 어느 정도의 격차일까요? 오즈월드 교수의 계산에 의하면, 이혼과 실업은 삶의 만족도를 각각 0.3포인트, 0.8포인트 하락시킨다고 하니, 중년의 위기 효과는 결코 작은 값은 아닙니다. 이들은 같은 보고서에서 영국 외의 여러 나라에 대해서도 분석을 했습니다. (그림1-B)는 2016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8개 회원국을 포함해 유럽의 36개 나라 3만2천명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를 조사한 뒤 그 결과를 정리한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중년의 위기가 분명히 나타납니다. (그림1-C)는 미국 사례입니다. 42만7천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질병통제센터의 조사에 기초한 것인데요. 중년 시기에서 아래로 들어간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영국이나 유럽에 비해 U자 형태는 조금 덜 한 모습입니다.

이제 한국을 살펴볼 때입니다. 한국의 연령별 행복도에 대해서는 유럽과 미국만큼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았습니다. 그간 한국개발연구원이나 보건사회연구원 등이 연령별 삶의 만족도를 단순 관찰해보니 외국과 달리 U자형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오즈월드 교수와 함께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싱가포르 경영대학 김성훈 교수의 도움으로 한국노동연구원 노동패널조사 자료를 이용해서 분석한 뒤 그 결과를 (그림1-D)]에 정리해 봤습니다. 그림을 보면 연령 이외의 변수 효과를 제거하더라도 연령에 따른 행복도 하락 경향을 낮추는 정도일 뿐, U자 형태는 매우 미약합니다. 이 점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린스턴대학의 앵거스 디턴 교수팀이 갤럽의 세계 여론조사를 이용해 연령별 삶의 만족도 조사를 수행한 결과는 참고가 됩니다. 이 연구에 의하면 세계 160개국 중에서 고소득 영어권 국가인 미국, 캐나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아일랜드 6개국에서는 U자형 곡선이 뚜렷하게 나타났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는 분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주관적 웰빙, 건강, 노화’, <랜싯>, 2014)

유인원도 중년의 위기 느낀다?

사실 중년기는 인생의 다른 시기에 비해 소득과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시기이니만큼 이 시기에 삶의 만족도가 낮다는 것은 다소 역설적이기도 합니다. 그간 여러 연구에서 조직의 책임자로서 갖게 되는 높은 스트레스, 10대 자녀와의 갈등 등 여러 요인을 그 원인으로 지적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 삼성서울병원이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로 우리 사회 중년들의 내면을 정리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진심’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중년들도 고독, 책임감, 가족과 주변의 기대 등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영국 에든버러대학의 알렉산더 와이스 교수는 매우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습니다.(▶‘유인원의 중년의 위기가 인간의 U자형 곡선과 일치하는 증거’, <미국 과학아카데미 논문집>(PNAS), 2012) 세계 각국의 영장류 학자들과 힘을 합쳐 유인원에게서도 중년의 위기가 나타나는지를 살펴본 것이죠. 물론 침팬지와 오랑우탄의 행복 정도를 인간처럼 설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조사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동물 연구에서 널리 쓰이는 방법에 따라, 동물원의 담당자로 하여금 대상 유인원의 기분이 긍정(부정)적인 정도, 다른 개체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기쁨의 정도 및 목표를 달성하는 정도를 평가하게 하고, 끝으로 평가자가 해당 오랑우탄이나 침팬지라면 얼마나 행복할지에 대해서 답변을 작성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가 (그림2)에 정리돼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동물원에 있는 침팬지 181 개체와 오랑우탄 172 개체에 대해서 연령별 행복도를 분석해보니, U자형 곡선에 잘 들어맞았습니다. 행복도가 최저가 되는 연령은 침팬지 27.2살, 오랑우탄 35.4살로, 인간 나이로 환산하면 모두 45~50살 구간에 해당합니다. 유인원에게서도 중년의 위기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학자들은 중년의 위기가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면, 인간들의 중년의 위기 원인 중 일부는 생물학적 특성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잠시 개인적인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제 지인 중 한 분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은 뒤 대학에서 공학 교수를 지내고 굴지의 미국 국립연구소의 간부로 근무했습니다. 오랜 기간 연구 경쟁에서 탈락하지 않고 살아남아 모두가 부러워하던 자리에 도달한 것인데, 이분이 40대 중반에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경제학과 대학원에 다니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격려를 하는 사람도 더러는 있었지만 대부분은 말렸는데요. 당시 연구소의 상관은 이런 말을 들려주며 적극적으로 만류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지금 겪는 것은 공학이 싫어서도 아니고, 경제학이 좋아서도 아니고, 그냥 중년의 위기다. 내가 그런 사람 여럿 봤는데, 스포츠카 하나 사고 잊어버려라. 그러면 해결된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쇼핑, 취미, 운동, 종교 활동 등 다양한 처방이 나옵니다. 과연 중년의 위기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결혼’ 여부와 행복도의 관계

캐나다고등연구원의 숀 그로버 연구원과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존 헬리웰 교수에 의하면, 중년의 위기 극복에는 결혼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가족의 삶’, <저널 오브 해피니스 스터디>, 2017) (그림3)은 영국 통계청의 연례 인구 조사를 활용해, 기혼자와 ‘미혼자’(비혼·이혼·사별 등)로 나눠 연령별 삶의 만족도를 정리한 것입니다. 많은 연구에서 밝혀진 바대로, 기혼자는 미혼자에 비해 모든 연령대에서 삶의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건 기혼자와 미혼자의 만족도 격차는 중년의 위기 시점에 0.6포인트로, 청년기 및 노년기의 격차 0.2~0.3포인트보다 훨씬 컸다는 점입니다.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갤럽의 세계 여론조사를 활용해 세계 여러 지역을 대상으로 분석을 확대했는데요, 우리가 관심을 갖는 동아시아 지역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림3-B)를 보면, 동아시아에서도 기혼자와 미혼자 사이의 만족도 격차가 청년과 노년기에는 크지 않았지만, 중년의 위기 시점에는 상당히 컸습니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도 미혼자만 따로 분리해서 보면 U자형 곡선이 분명하게 나타날 정도였습니다. 연구팀은 이를 스트레스가 가장 커지는 중년의 위기 시점에 배우자가 이를 완화해주는 효과 때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삼성서울병원의 조사를 봐도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의 중년들에게 ‘현재 가장 큰 위로를 주는 대상’으로는 배우자(44.7%)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자녀(20.5%), 부모(10.4%), 친구(7.4%), 종교단체 등의 지인(3.8%)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더 소중한 존재이죠. 그리고 ‘힘들 때 위로받고 싶은 대상’ 역시 배우자가 63.6%에 이를 정도로 절대적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부담을 덜어주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 주로 거론되는 존재는 미래의 희망을 잃어버리고 있는 청년세대, 그리고 일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도 경제적으로 곤궁한 처지에 있는 어르신들입니다. 저는 50대 초반의 중년인데 이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년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 여전히 크다고도 생각합니다. 다만 사회를 굳건히 지탱하는 중추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는 중년들한테도 점차 피로가 누적돼 가고 있는 듯합니다. 이들이 중년의 위기에 무너지지 않고 잘 헤쳐나가길 기원하면서 오늘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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