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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딸바보 효과, 기분만 좋은 줄 알았더니 ‘과학’이었나봐

등록 2017-11-25 12:10수정 2017-11-27 15:37

[토요판] 신현호의 차트 읽어주는 남자
① 딸 효과(daughter effect)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갈무리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갈무리

우리는 갈등의 현장에서 으레 ‘역지사지’하라는 충고를 자주 접한다. 당사자 각각의 처지에 따라 행동과 주장이 달라지니, 상대방의 입장에 한번 서보면 갈등이 쉽게 해결되리라는 기대에 기반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자신이 실제 처한 상황도 아니고 과거에 유사한 일을 경험한 바도 없다면, 처지를 바꿔서 생각하는 게 말처럼 잘될 턱이 없다. 자본가가 노동자의 고통을, 부자가 가난한 자의 곤궁함을, 건강한 사람이 장애인의 불편함을,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의 공포를, 그리고 남성이 여성의 억울함을, 역지사지라는 한마디 말로 쉽게 느끼기는 어렵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딸이 부모 행동에 미치는 효과’ 연구들
미국대학여성협회 친여성지수 보니
‘아들만 둘’ 의원 44점, ‘딸만 둘’은 67점
딸 둔 판사의 친여성 판결 성향도 높아

민간부문에서도 ‘딸 효과’ 사례 많아
남성 CEO, 딸 있으면 ‘여성성’ 늘어나
여성채용 비율도 증가하는 성향
딸이 성장할수록 젠더 이슈에 눈떠

그래서 우리는 예를 들어 문학작품이나 역사를 통해서 타인의 경험을 간접적으로라도 겪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가족이 겪는 현실이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간접 경험이 아닐까? 장애 아동의 부모가 누구보다 열심히 장애인 학교 건설에 나서고, 군사독재 시절 자식이 양심수로 옥고를 치르자 보수적이었던 부모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에 나가 반독재 활동을 하는 등 많은 사례가 있지 않나. 그런 점에서 딸을 키우는 아버지의 위치는 남성이 여성의 처지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강력한 기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퇴임을 얼마 앞두고 강력한 성평등 메시지가 담긴 기고문을 <글래머>에 보낸 바 있다. “당신이 두 딸의 아빠라면, 성별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회에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 딸을 키우는 아빠가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딸들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남성 공화당 판사의 ‘개선효과’ 가장 높아

오바마 전 대통령 외에도 딸을 키우는 아빠들의 경험담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해 나라 밖의 사회과학자들 가운데는 ‘딸을 키우는 것이 아빠의 행동 변화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 본격적인 검증에 나선 사례가 많아 흥미롭다. 이른바 ‘딸 효과’(daughter effect) 분석이다. 우선 예일대학의 경제학자 에보니아 워싱턴이 ‘여성의 사회화: 딸들은 국회의원 아버지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미국경제학리뷰>, 2008 ▶바로가기)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첫 돌파구를 열었다. 미국대학여성협회(AAUW)와 전미여성기구(NOW)는 미국 의원들의 젠더 이슈 관련 투표 성향을 분석해 의원별로 친여성지수를 각각 산정하는데, 워싱턴 교수는 자식이 두 명인 의원들을 자녀의 성별로 구분해서 친여성지수를 집계해봤다.(그림1)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A)를 보면, 1997~2004년 기간에 아들만 둘인 의원은 미국대학여성협회 친여성지수가 44점인 반면, 1녀1남인 의원은 51점, 딸만 둘인 의원은 67점이었다. 딸 숫자에 따라 친여성지수가 상승했는데, 민주당 의원보다 공화당 의원의 상승 효과가 더욱 뚜렷했다.(민주당 7%, 공화당 270%) 1997~1998년의 전미여성기구 친여성지수도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B)

사법부의 상황은 어떨까. 에머리대학의 정치학자 애덤 글린과 하버드대학의 정치학자 마야 센은 <미국정치학저널>(2015)에 게재한 ‘사법적 공감: 딸을 키우는 것은 판사의 여성 이슈 재판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바로가기)라는 논문을 통해, 딸 효과가 사법부에서도 관철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1996~2002년 미국 연방항소법원에서 다뤄진 재판 가운데 고용 관련 여성 차별, 출산 및 낙태 관련 여성권, 교육에서의 여성 차별 등 젠더 이슈라 할 수 있는 990건이 분석 대상이었다. 재판에 참여한 전체 판사 224명 중 남성(186명)이 여성(38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분석 결과는 입법부의 경우와 비슷했다. 그림2를 보면 딸을 한 명이라도 둔 판사는 평균보다 친여성 판결 성향이 7% 높게 나타났다. 딸이 여러 명 있더라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좀더 구분해서 살펴보면, 판사인 어머니에게 딸이 미치는 친여성 판결 성향 개선 효과는 5%인 반면, 판사가 아버지인 경우에는 8%였다. 또 하나. 미국의 경우 모든 연방법원의 판사는 대통령이 지명하므로 지명자(대통령)의 소속 정당이 판사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의미있는 판단 기준을 제공한다. 각각 민주당과 공화당 성향인 판사에게 딸이 미치는 친여성 판결 성향 개선효과는 각각 4%와 7%였다. 요약하자면, 딸의 존재가 판사인 부모의 판결 성향을 친여성적으로 바꾸는 효과는 보수 성향의 남성 판사에서 가장 강했다. 이는 남성 공화당 판사가 애초 친여성 성향이 매우 약했기 때문에 그만큼 개선효과도 크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여성 경영자일수록 사회적 책임에 적극적

과연 민간부문에서도 딸 효과가 여지없이 나타날까? 마이애미대학의 금융학자 헨리크 크롱크비스트와 중국 유럽국제경영대학의 금융학자 프랭크 위가 이 문제에 도전했다. 이들은 ‘딸의 영향: 경영자, 여성의 사회화, 기업의 사회적 책임’(<금융경제학저널>, 근간 예정 ▶바로가기)이라는 논문에서 1992~2012년 미국 에스앤피(S&P)500 지수에 속한 미국 상장 대기업 최고경영자(시이오) 자녀의 성별이 해당 기업의 사회적 책임(시에스아르)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했다. 앞서 살펴본 연구들과 달리, 시에스아르는 그 자체로 젠더 이슈는 아니다. 다만 여성이 남성에 비해 타인의 행복에 더 큰 책임감을 느끼므로 사회적 측면을 중시한다는 주장은 줄곧 제기돼 왔다. 시에스아르가 주주뿐 아니라 노동자와 공동체 활동에도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요구하기 때문에, 시에스아르가 젠더 이슈와 관련될 수 있다는 가설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우선 최고경영자가 여성인 경우를 살펴봤다. 여성 최고경영자의 경우 이 기업의 시에스아르 지수가 전체 기업 평균보다 3.56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만일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딸을 한 명으로 둔 경우엔 시에스아르 지수가 평균보다 0.97포인트 높았다. 대부분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남성이라는 점에 비춰본다면, 남성 최고경영자가 딸을 뒀을 경우엔 비록 최고경영자 본인이 여성일 때엔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대략 25% 정도의 ‘여성성’을 획득한다는 얘기다.

최고경영자와 관련해선 그림3도 흥미롭다.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딸이 없는 사람에서 딸이 있는 사람으로 바뀔 경우, 그 기업의 시에스아르 지수는 11.3에서 12.33으로 높아진 반면, 그 반대의 경우엔 오히려 11.85에서 10.61로 낮아졌다. 이를 통해 기업의 시에스아르 활동이 최고경영자 자녀의 성별에 매우 빠르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고경영자의 자녀 성별에 따라 해당 기업의 시에스아르 활동이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바람직한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두 사람의 추정에 따르면, 최고경영자가 딸을 둔 경우 추가적인 시에스아르 활동으로 인해 그 기업의 판매관리비가 3.2% 늘어났다. 이는 중위 기업 순이익의 10.4%에 해당하는 4300만달러의 추가비용을 야기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을 것이다.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오직 이윤을 창출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면 낭비라 여겨질 테지만, 시에스아르 활동이 사회를 좀더 건강하게 만들고 기업의 장기적 지속가능성도 높인다고 보는 진보 성향의 기준에 따른다면 건전한 투자활동으로 볼 수도 있다.

벤처캐피털 업계는 유독 남성 비중이 높은 분야다. 미국의 988개 벤처캐피털은 최근 5년간 회사당 4.6명의 투자전문가를 채용했는데, 그중 여성은 8%에 불과했다. 이 기간 동안 단 한 명의 여성 투자전문가도 채용하지 않은 곳이 712개사(72%)나 된다. 하버드대학의 경제학자 폴 곰퍼스와 소피 왕은 최근 공개된 ‘그리고 아이들이 인도할 것이다: 벤처캐피털의 젠더 다양성과 성과’라는 전미경제연구소(NBER) 보고서(바로가기)를 통해, 벤처캐피털 파트너의 자녀 성별이 1990~2016년의 채용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했다.

그림4 (A)를 보자. 파트너들의 전체 자녀 중 아들의 수가 딸의 수보다 큰 벤처캐피털의 여성 채용 비율은 8.93%였지만, 아들과 딸이 동수인 기업은 10.57%, 딸이 아들보다 더 많은 기업은 10.59%로 자녀 중 딸의 비중이 커질수록 여성 채용 비율도 높아졌다. 특히 핵심 의사결정자인 고위직 파트너의 자녀만을 대상으로 할 경우, (B)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 채용 비율은 각각 8.68%(딸 다수), 9.78%(딸·아들 동수) 및 11.87%(딸 다수)로, 효과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났다.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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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캐피털 기업성과에도 긍정적 효과

곰퍼스와 왕의 계산에 따르면, 파트너의 아들 한 명이 딸로 바뀔 경우 해당 벤처캐피털의 여성 채용 비율은 24% 증가했는데, 고위직 파트너(28%)가 하위직 파트너(9%)보다 높았다. 또한 자녀의 나이가 12살 이하일 때 여성 채용 비율은 15% 증가하지만, 12살 이상일 경우엔 증가율이 29%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딸이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성적 불평등을 경험하게 됨에 따라, 벤처캐피털 고위직에 있는 아버지의 근심이 더 커지기 때문이라 풀이된다. 벤처캐피털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도 마찬가지다. 파트너 아들 한 명이 딸로 대체될 경우, 거래 성공 확률은 10% 높아져 내부수익률이 23% 증가했다. 딸 효과가 성적 평등뿐 아니라 기업의 성과에도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입법부, 사법부, 대기업, 벤처캐피털 등 네 영역에서 의사결정자들이 딸을 키울 때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최근의 주요 연구를 살펴봤다. 모든 연구는 남성이 주도하는 영역에서도 아버지들이 딸을 키우면서 젠더 이슈에 눈을 떠 점차 친여성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는 점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물론 미국 사회를 대상으로 삼았다는 한계는 있지만, 프랭크 위는 필자와의 전자우편 대화를 통해 중국에서도 흥미로운 딸 효과 연구가 진행중이라고 알려왔다. 한국에서도 관련 연구를 통해 유사한 결과가 발견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유승민·김부겸 등 국내 몇몇 유력 정치인의 딸들이 선거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했고, 이를 두고 일부 언론과 유권자들이 ‘국민 장인’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 퍼뜨리는 일도 벌어졌다. 정치인의 딸이 아버지를 위해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 자체를 무턱대고 흠잡을 순 없다 하겠다. 하지만 정치인들도 딸들이 살아갈 사회를 위해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보다 분명히 밝히고, 그 길로 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평균의 법칙이 관철된다고 하더라도 항상 예외가 있기 마련이기에, 모든 딸들의 아버지가 성평등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건 아니라는 사실 또한 분명하기 때문이다. 딸을 첫째 자녀로 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만 봐도 알 수 있다. 딸 이방카는 지난 미국 대선 기간 중에 아버지가 ‘페미니스트’라고까지 주장했으나, 정작 트럼프야말로 우리 시대의 대표적 마초로 맹활약 중 아니던가.

신현호 경제평론가. 과거 케이피엠지(KPMG) 경영 컨설턴트와 정당의 경제정책 전문가 시절, ‘측정되지 않는 것은 개선할 수 없다’는 피터 드러커의 격언을 금과옥조로 삼아 활동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 ‘증거기반정책’(evidence based policy)이 중요성을 더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증거에 기반을 둔 소통의 부재가 더 큰 문제라는 생각에 이 칼럼을 통해 사회·경제 각 분야의 데이터와 차트를 소재 삼아 독자와 대화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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