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최고위급 임원들이 8년 만에 부활한 ‘나이정년’ 적용 때문에 폭풍전야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지난달 31일 발표된 삼성전자 부문장 인사에서 60살이 넘은 권오현(65) 부회장과 윤부근(64), 신종균(61) 사장이 경영일선에서 동시에 물러났다. 이상훈(62) 사장도 최고재무책임자를 그만두고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났다. 후속 사장단 인사에서는 50대인 부사장 7명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는 “세대교체를 통한 경영쇄신에 중점을 뒀다”며 사장 승진자의 평균 나이가 50대임을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사장 정년 60살’을 공식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이인용(60) 커뮤니케이션 팀장(사장)까지 물러날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삼성에스디에스도 정유성(61) 대표가 물러나고, 홍원표 솔루션사업부문장(57·사장)이 대표로 승진했다.
‘사장 정년 60살’ 적용은 1938년 삼성 창사 이후 두번째다. 삼성 인사규정에는 임원 정년은 없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삼성 특검 직후인 2009년 “경영자가 60살이 넘으면 머리가 굳어진다”며 물갈이를 지시했다. 이번 삼성전자의 세대교체도 이재용 부회장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료:삼성전자(전자공시)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삼성에서는 후속 사장단 인사를 앞두고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다. 특히 최고경영자가 60살을 넘긴 계열사들은 좌불안석이다. 삼성의 14개 상장 계열사 가운데 최고경영자(CEO) 나이가 60살 이상인 곳은 인사가 단행된 삼성전자·에스디에스를 포함해 삼성물산·중공업·엔지니어링·생명·화재·증권·제일기획 등 9개(64%)에 달한다. ‘사장 정년 60살’을 적용할 경우 상장 계열사 절반 넘게 최고경영자가 교체되는 대폭 물갈이가 예상된다.
특히 지주회사격인 삼성물산은 4명의 사내 등기이사 가운데 최치훈, 김신, 김봉영 사장 등 3명이 60대여서 한꺼번에 그만두면 경영공백마저 우려된다. 삼성전자 사장단도 16명 중에서 60살 이상이 10명에 달한다. 이 중 권오현 부회장 등 5명은 이미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고, 윤주화(64)·장원기(62) 등 5명은 미정이다.
지난 삼성 특검 직후처럼 부사장 58살, 전무 56살과 같은 정년이 적용되면 그야말로 ‘인사태풍’이 불 전망이다. 삼성전자만 봐도 부사장 54명 가운데 58살 이상이 9명(17%)이고, 전무는 104명 중에서 56살 이상이 24명(23%)으로 비율이 더 높다.
‘임원 정년’의 장점은 세대교체를 통한 과감한 경영쇄신이 꼽힌다. 삼성전자 임원은 “인사는 인체의 신진대사와 같다. 수년째 사장단 인사가 적체돼 적절한 물갈이와 세대교체를 통한 조직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최고경영자의 경우 나이보다 업무능력이 더 중요하고, 회사별로 업종도 다른데 획일적으로 임원 정년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도 많다. 비전자 계열사의 임원은 “전자 계열사들 만큼 산업의 변화 속도가 빠르지 않은 비전자 계열사에도 똑같은 나이정년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 아니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10대그룹의 고위 임원은 “국내 다른 그룹이나 글로벌기업에서 임원 정년을 적용한 사례를 들은 바 없다”며 “임원은 임기보장이 없지만 나이정년도 없고, 실적에 따라 인사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또 임원 정년이 총수 지시에 따라 일회성으로 시행되고, 총수는 적용을 받지 않는 것도 논란거리다. 삼성전자의 한 전직 임원은 “특검 직후 나이 정년은 ‘2인자’로 불린 이학수 부회장 인맥의 정리가 주목적이었고, 다음해부터는 흐지부지됐다”면서 “솔직히 ‘오너 마음’인 셈”이라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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