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0월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삼성전자가 10월31일 부문장(사장급) 교체인사를 단행했다. 많은 언론이 이재용 부회장의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의미 부여와 함께 ‘뉴삼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반도체·가전·휴대폰 등 3대 부문장의 동시교체가 처음이고, 신임 부문장이 모두 50대로 세대교체가 이뤄진 점이 부각됐다. 하지만 인사 내용을 살펴보면 기업지배구조의 2대 원칙인 ‘투명성’과 ‘책임성’이 완전히 무너져, ‘뉴삼성’이 아니라 ‘낡은 삼성’의 관행이 답습됐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삼성 인사는 법적 실체가 없는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 총수 지시를 받아 주도했다. 미전실은 뇌물사건에서도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은 게 드러났다. 이런 미전실의 행태는 투명성과 책임성을 결여한 후진적인 재벌 지배구조의 상징이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농단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참석해 “미전실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많은 경우 무리한 판단을 하고, 심지어 불법행위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삼성은 2월말 미전실 해체와 계열사 자율독립경영을 담은 경영쇄신안을 발표해 기대감을 낳았다. 김상조 공정위원장도 재벌개혁을 몰아치기식으로 하지 않겠으니 재벌 스스로 시장과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화답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가 끝난 뒤 과거와 어떤 점이 개선됐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단지 부문장 3명이 모두 자진사퇴했고, 후임 경영진을 추천했으며, 이사회가 이를 받아들였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미안합니다. 이사회에서 있었던 일은 외부에 일절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삼성전자 사외이사 중에서 인사경위를 당당하게 설명하는 사람은 없었다. 회사가 사상 최고 실적을 거둔 상황에서 기존 경영진이 동시에 자진사퇴했다는 것도 믿기 어렵지만, 떠나는 경영자가 후임자를 정했다는 얘기도 한국 기업 역사에서 전대미문의 일이다. 올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240조원과 50조원(연결 기준)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거대 글로벌 삼성전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외국에서는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삼성 안팎에서는 (감옥에 있는) 이재용 부회장의 지시로 미전실 출신 전직 팀장이 인사의 실무작업을 주도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삼성 계열사의 임원은 “외부에서 인사작업을 주도하다보니 줄을 대고 싶어도 어렵다는 웃지못할 얘기까지 들린다”고 전했다. 미전실이 해체됐지만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 문제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또 삼성이 국민에게 약속한 계열사 자율독립경영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삼성의 경영쇄신 의지가 진정이었다면, 포스코처럼 최고경영자추천위원회와 같은 관련 제도를 진작에 구축했어야 했다. 큰 상을 줘도 부족한 기존 경영진들은 모두 물러났는데, 정작 실형이 선고된 이재용 부회장은 그대로 이사를 유지한 것도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더구나 재벌의 개혁 실적을 평가하기 위한 김상조 공정위원장과 5대그룹의 간담회를 코앞에 두고 인사가 단행된 것도 충격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앞으로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저희 입장을 조금 더 투명하게 설득하고 공감을 받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빈말이었던가?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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