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비자금 사건 등 사과뿐
20년간 3차례 변화 기회 놓쳐
결국 이재용 구속사태로 번져
새 경영체제 모색 선택 기로에
20년간 3차례 변화 기회 놓쳐
결국 이재용 구속사태로 번져
새 경영체제 모색 선택 기로에
그래픽_김지야
“선단장 부재로 미래투자 애로”
2·3심 감형땐 변화가능성 낮아
정부 재벌개혁 기조와 정반대
미래 불확실성만 되레 키울판… 삼성이 위험을 무릅쓰고 기존 승계 작업을 지속할지, 아니면 오너경영을 대체할 새 경영체제를 모색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삼성은 지난 2월 이 부회장의 기소 직후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각사 이사회 중심의 자율경영을 선언했다. 하지만 아직 변화의 조짐은 없다. 삼성에서 20년 이상 일한 한 팀장은 “기업에서 최고경영자 인사는 인체의 혈액순환에 비교할 정도로 중요한데, 지금 추세라면 지난해 말에 이어 올해 말 인사도 불확실하다”며 “각사 자율독립 경영은 말뿐이고, 현재는 이 부회장 거취 문제에 올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총수가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황제경영’에 익숙한 한국 재벌에는 총수가 없거나, 총수가 있어도 전권을 행사하지 않는 방식은 생소하다. 삼성 안에서는 벌써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은 최근 삼성을 고기잡이 선단에 비유하며 “선단장이 부재 중이어서 미래를 위한 투자나 사업구조 재편에 애로사항이 많다”며 답답한 심정을 밝혔다. 삼성 계열사 임원도 “이 부회장은 (감옥) 안에 있고,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은 해체됐고, 사장단회의는 한번도 열리지 않았다”며 “삼성이 최대 위기”라고 걱정했다. 삼성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중요 변수로는 향후 이 부회장의 판결 등 몇가지가 꼽힌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이 부회장이 2·3심에서도 1심 이상의 실형이 유지되면 새 체제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대폭 감형되거나 집행유예로 풀려나면 변화 가능성은 낮다”고 예상했다. 외국계 투자은행의 리서치부서 책임자는 “아이티(IT)업계의 빠른 변화 속도를 감안할 때 ‘옥중경영’은 삼성전자의 미래 불확실성을 키울 것”이라며 “이 부회장의 장기 경영 공백이 현실화하면 근본적인 대안의 필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와 국회의 개혁법안 처리도 관건이다. 삼성 내부에 정통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지주회사 전환 관련 자사주 규제 강화 등과 같은 재벌개혁의 속도가 승계 작업과 새 경영체제 모색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이 부회장의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일부 전문경영인들이 새로운 경영축으로 부상할 가능성에도 주목한다. 삼성 새 경영체제 전환?
이, 1심형 유지땐 결단 가능성
과거 “훌륭한 분 있으면…” 단초
전문가 “총수-경영인 역할분담”
기득권 포기하고 ‘새 삼성’ 필요 삼성이 변화를 선택한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 “총수가 최고경영자가 아닌 지주회사 이사회 의장을 맡아 일상 경영은 전문경영인에 맡기고, 자신은 그룹 경영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한 바 있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선진국을 보면 오너경영에서 새 경영체제로의 전환은 기업 내부 사정은 물론 사회 인식과 시장환경 등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는데, 한국 재벌도 근본적인 변화의 초입에 들어선 것 같다”며 “이 부회장으로서는 오너경영 유지를 위해 금융을 포기하는 방안과 금융은 유지하되 일상적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의 권한을 대폭 줄이는 방안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계에서는 삼성이 오너경영의 대안을 찾는다면 다른 재벌보다 쉬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30대 그룹의 한 팀장은 “이건희 회장은 일상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큰 방향을 제시하는 경영시스템을 구축해 좋은 성과를 거뒀기 때문에 오너경영의 대안 모색에도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나보다 훌륭한 분이 있으면 경영권을 넘기겠다”고 말해 국민을 놀라게 했다. 관건은 이 부회장의 선택이 사회와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삼성에도 도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 계열사의 고위 임원은 “이 부회장이 과거(기득권)를 모두 내려놓고, 완전히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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