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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이재용의 눈물이 설득력 없는 이유

등록 2017-08-08 15:17수정 2017-08-08 21:48

“승계 생각안해…그룹 의사결정자 아니다” 해명
2014년 부친 와병 뒤 상장·합병 등 승계작업과 모순
기존 “4인 수뇌부 회의·총수 역할 수행” 설명과도 배치
‘바보 자처’ 리더십으로 ‘온실 속 화초’ 이미지만 강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7일 삼성 뇌물사건 결심공판에서 최후진술을 통해 사익을 위해 대통령에게 부탁한 적이 없다며 재차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부회장이 최순실씨 등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를 부인한 핵심 논거는 두가지다. 지금껏 경영승계를 생각한 적이 없고, 삼성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첫째 논거는 뇌물제공 대가로 경영승계 현안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신규순환출자 고리 해소 등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특검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다. 삼성쪽은 “승계는 특검이 내세운 ‘가공의 틀’에 불과하다”는 극언까지 쏟아냈다. 둘째 논거는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은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에게만 보고됐고, 삼성물산 합병도 최 부회장이 알아서 결정해 자신은 몰랐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경제계에서는 이런 해명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이 더 많다. 심지어 삼성 출신들도 형사처벌을 피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은 이해한다면서도 혀를 차는 이들이 적지 않다. 왜 그럴까?

이 부회장이 승계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러운 와병 이후 빠르게 진행된 일련의 승계작업을 모두 부인하는 것이다. 삼성은 2014년 이 부회장의 주식지분이 많은 삼성에스디에스와 제일모직 상장을 잇달아 성사시켰다. 2015년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강행했다. 시장과 언론은 모두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 본격화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 이 부회장은 그룹 핵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승계작업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확보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이 부회장이 삼성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아니라는 주장은 사건 이전의 삼성 설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언론의 관심은 이 부회장이 언제 회장으로 승진해 3세경영을 공식화할지에 집중됐다. 이에 대해 미래전략실 고위임원은 기자들에게 “부친(이 회장)이 아직 살아있는데 아들(이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이 부회장은) 회장 타이틀만 안달았을 뿐 업무수행과 권한행사에서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서 이 부회장이 사실상 삼성의 총수임을 분명히했다.

이 부회장이 그룹현안에 대해 보고받지 않고 최지성 부회장이 대신 결정했다는 주장에 배치되는 증언도 많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해 과거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에 만난 미래전략실 팀장으로부터 “이재용 부회장, 최지성 부회장, 장충기 사장, 김종중 사장 등 4명이 거의 매일 만나서 그룹현안을 논의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의 한 전직 임원은 “오너 재산과 관련된 사안을 전문경영인이 독단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면서 최 부회장의 삼성물산 합병 결정 주장에 코웃음쳤다. 4대그룹의 고위임원도 “대통령 관련 사안은 금액에 상관없이 총수 직보 사항”이라며, 이 부회장이 승마지원에 대해 보고받지 않았다는 주장을 일축했다.

삼성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의 변명이 삼성이나 자신에게 득보다 해가 더 클 수있다고 우려한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책임지는 자리를 맡지 않으면서 ‘온실 속 화초’라는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그는 이번 재판에서 가신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리더십의 한계를 또다시 노출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재용 부회장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은 스스로 바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우리사회는 삼성이 이번 사건에 대해 솔직히 잘못을 시인하고, 국민에게 사과한 뒤 재발방지 대책을 포함한 근본쇄신에 나설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억울하다며 설득력 없는 주장만 늘어놓아 기대를 저버렸다. 이 부회장이 최후진술에서 흘린 눈물을 믿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됐을까?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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